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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안에서684

돌사람 돌의 옛 이야기 緣海 친구들이여 나는 버려진 한 덩이 망각에 불과했지만 정에 맞아 박동이 시작되고 숨길이 트여 대지에 우뚝 서며 생명을 얻어 삶이 시작됐다오 시간이 흐르고 그 시간 속에 영광도 치욕도 물러갔지만 사랑마저 모두 보내고 무너지지 못해 지켜온 세월 탑으로 벅수로 문무석으로 오.. 2008. 5. 6.
오월, 움직임 오월, 움직임 緣海 마음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움직임이 일고 강물처럼 머물 곳 찾아 나즈막 흘러가더니 오, 그 위에 실린 햇살 한 토막 어디로 갔나 새로 난 잎새 위 봄비 한 방울 흩어질 때 소스라치는 놀람처럼 안타까운 떨림이 일고 오, 그 위에 맺힌 눈물 한 방울 어디로 갔나 누구였나? 오월이 움.. 2008. 5. 4.
칸나 칸나 / 윤순정 젊어서 슬픈 여자들의 무리 아예 얼굴은 땅 속에 박고 거꾸로 섰다 하늘바라기하며 수없이 돋아나는 클리토리스 철갑처럼 걸쳤어도 도무지 가려지지 않는 치마 8월의 2차선 도로를 질주하는 수많은 사내들 그 빛깔 너무도 강렬하여 아예 실눈을 떴다 눈, 코, 입 땅 속에 묻혔으니 부끄러.. 2008. 5. 1.
핑계 핑계 緣海 마음에 두고도 딱따구리 나무 찍듯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은 그날, 햇빛이 눈부셨기 때문이었다고 해두자 마음에 담아 두었음은 마음이 비어 있었다는 것 말을 하지 못했음은 할 말이 너무 많았다는 것 아주 나중에 잃어버린 복권만큼이나 미련이 미련스럽게 남더라도 바보처럼 말을 하지 못.. 2008. 5. 1.
낙화 HTML 삽입 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 낙화 ] - 緣海 - 우울히 견뎌온 날 끝에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고 웃음이 항시 머물던 입가엔 어느사이 씰룩이는 글썽임만이 버릇처럼 자리잡았네 한 참이나 해가 남은 봄날이 중천에서 빛나고 석양은 아직 만나지도 못했는데 닥쳐온 운명을 이해 못해 왜 가야 하는가 왜 가야 하는가 막 붉어지는 햇살을 받으며 아직은 세상을 더 보고 싶은데 이 손을 잡아줘 이 손을 꼭 잡아줘 하지만 한낱 너무나 바쁜 이 세상에 나는 주인이 아니었음을 가야만 하는 손님이었음을 입술을 깨물며 느끼려 하네 너무나 무서운 이 마음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 다독이며 너무나 짧았던 봄날 먼 길 홀로 가려 하네 흐려진 눈으로도 늘 보고 싶었던 그대여 이제 마주잡은 그 손 놓아도 좋아 아니 이젠 놓아줘 제.. 2008. 4. 29.
나에게 그대는 나에게 그대는 緣海 진주는 끈으로 꿰어지지만 끈이 어디 보이던가요 살아왔던 날들은 세월로 엮어지지만 세월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끈이 보이지 않아도 목걸이로 인해 그 존재를 알 수 있고 세월은 보이지 않지만 삶 속에 그 흔적이 묻어 있듯 나의 모습이 지금처럼인 것은 보이지 않는 그대.. 2008. 4. 27.
너무나 짧은 봄날 너무나 짧은 봄날 緣海 봄이여 그대를 기다린 겨울은 너무나도 길었지만 그대를 만난 봄날은 너무나도 짧구려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다투어 꽃들은 피어났다 지고 새로운 초록이 그 자리를 메워갑니다 너무 쉽게 가버리는 봄날이 아쉬운 것은 바쁘게 붕붕대는 벌들의 날개짓 속에 서늘한 미련들을 감.. 2008. 4. 27.
소금같은 별 소금같은 별 緣海 메밀꽃밭을 홀로 걷다가 메밀꽃이 소금같다고 생각했다 소금은 기나긴 밭도랑마다 안개처럼 피어났다 안개낀 염전길을 걷다가 돋아나는 소금이 별같다고 생각했다 별은 가라앉은 바닥마다 메밀꽃처럼 피어났다 별꽃 핀 밤길을 걷다가 별들이 안개꽃같다고 생각했다 안개꽃은 미명.. 2008. 4. 20.
두통이 개이던 날 아침 두통이 개이던 날 아침 緣海 두통이 개이던 날 아침 청노루귀가 앞산을 뛰어 다니고 바람꽃이 봄바람에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어대고 있었다 머리를 곱게 넘긴 얼레지가 투명한 아침볕에 기지개를 켜고 갈래치마를 촘촘히 두른 처녀치마는 긴 목을 더 뻗어 하늘을 보고 있었다 두통이 맑게 개이던 날 .. 2008. 4. 18.
시화전 올해에 다시 옥합문학회 시화전 작품 제작을 의뢰받아 만들게 되었습니다. 옥합문학회는 대전의 장애우들의 문학회로서 우리와는 사뭇 다른 그들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작품들을 많이 써오고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비판의 시각과 내면의 갈등, 절망과 비관 속에서도 미래를 향한 희망을 가지고자 애쓰는 그들의 여러 시편들에서 때로는 섬숙한 삶의 내면을 발견하고 놀랄 때가 많습니다. 정상인보다도 더 놀라운 의지와 마음 속 풍경을 간직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친구들의 옆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조그마한 재주를 그들을 위해 보태고자 합니다. 시의 주제가 봄을 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요근래 찍은 현호색 사진을 위주로 하여 작업을 해보았습니다. 이제 이 작품들을 인화점에서 인화하고 표구점에서 액자작업을 하여 전시장에 걸.. 2008. 4. 15.
만해 생가 여행기 Ⅰ. 여행 스케치 내가 좋아하는 가수 중에 “여행스케치”라는 그룹이 있다. 이들이 펴낸 제1집 음반 중에 실려 있는 [여행스케치]라는 노래를 듣다보면 여행을 떠나기 앞서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여행 중에 들을 수 있을 법한 소란스러운 대화들로 간주를 대신하고 있다. 서로 미루다 쌀을 안 가져와.. 2008. 4. 8.
얼레지와 노루귀의 사랑 이야기 [어느 꽃같이 고운 봄날이었습니다] 겨우내 얼었던 개울물도 풀려서 여기저기 웅크리고 있는 바위 사이를 소리내어 흘러가고,가지 끝마다 새 잎들이 돋아나고, 그 사이에서 새가 울어대는 아름다운 계절이었지요.계곡 물을 따라 떠내려 가다가 돌들 사이에서 잠시 멈춘 나뭇잎 할아버지가 얘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개울가 바위틈에 얼레지 소녀가 살고 있었단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며 햇살에게 말을 거는 그 소녀는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봄날이 좋았습니다. 괜히 지나가는 꿀벌에게 웃음도 지어 보이고, 먼 산을 바라보며 까치발을 딛기도 했지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수선화처럼 하루를 보내기도 했답니다] 얼레지소녀는 모든게 궁금했습니다. 봄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저 산 너머에는 누가 살고 있.. 2008.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