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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안에서678

이순(耳順) 이순(耳順) / 연해 탑골공원 큰 길 건너다 한 가운데에서 호통치는 노인을 보았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말 할 입 클수록 들을 귀는 작아지는가 신호 끊기고 자동차들이 호통칠 때까지 멈추지 못하는 저 나이에 옛 사람은 귀가 순해졌다는데 호통보다 소통이 절실한 나이 귀가 순해지고 입은 부드러워져야 하는 나, 나의 나이 2022. 9. 9.
뭇 별로 바위에 피다 뭇 별로 바위에 피다 / 연해 바위솔도 서러운데 하물며 난쟁이바위솔이다 몸을 낮추어야 해 보일 듯 말 듯 모여 있는 모래알갱이처럼 작은 꽃을 피워야 해 한 방울의 새벽 이슬과 먼지가 뭉친 흙이 우주의 전부다 태양을 향해 꽃잎을 열어 신과 함께 한 시간은 자신과 함께 한 시간일 뿐 온 힘으로 뿌리를 잡고 바위에 매달리는 삶 끝에 마침내 별들이 바위에 피었다 2022. 9. 9.
길을 막고 길마가지 길을 막고 길마가지 - 연해 - 어제는 때 아닌 눈 낙화에 서러워 울었습니다 남은 눈길 모두 지우고 돌아 앉은 밤 바람이 골짜기로 내려옵니다 오늘은 첫 햇살에 훠이 훨 전부 떠나 버린 아침 빈 산골에 가득한 공허 시린 꽃잎을 열어 그 아찔한 공간을 풀어놓습니다 Will You Go Lassie Go?(The Wild Mountain Thyme) - Silencers 2022. 9. 9.
난초 옆에서 [ 난초 옆에서 ] - 緣海 황호신 - 난초꽃이 예뻐 보여 말을 부려보기로 했다 우주의 이치는 수학으로 표현된다지만 꽃의 매력은 언어 외에 무엇으로 말하겠는가 다만, 추상적 미학의 올바른 서술은 침묵 ! * * * * * * * 몇몇 새우난초의 변이종 가운데 기본종인 새우난초다. 잎은 여타 새우란하고 별 차이가 없지만, 숲 사이로 새어드는 햇빛에 투영된 붉은 꽃잎이 무척 아름답다. 꽃잎이 녹색인 것, 백색인 것, 황색인 것 등 내륙에서도 몇몇 종들은 만나볼 수 있지만, 희귀성 말고는 이 기본종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난초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선조들의 많은 칭송과 찬사들이 있어 왔다. 예쁜 난초 옆에 서면 먹을 갈아 솜씨좋게 난을 치거나 한 줄 읊조리지 않고는 못견딜 정서에 드는 것은 미인 옆에서도 초.. 2022. 9. 6.
하루 [ 하루 ] - 緣海 황호신 - 하루살이에게 하루는 일생의 전부 꽃에게 하루는 화무십일홍 전 생애의 십프로다 오늘 내가 보낸 하루는 숱한 날들중 하나 라고 너무 쉽게 살아버리지 않았던가 * * * * * * 다음 블로그 종료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여 부랴부랴 티스토리로 이전하였습니다. 본문은 모두 이전이 되었지만, 사라져버린 댓글들... 한때의 마음과 마음이 묻어나던 소중하고 긴 댓글들이 사라져버린게 너무나 안타깝네요. 아직은 낯설고 어려운 티스토리의 설정들이 선뜻 다가오지 않아요. 블로그 이름과 닉네임이 살아있어서 굳이 찾는다면 어렵진 않겠지만, 오랜 친구들의 목록이 사라진 점도 너무나 아쉽구요. 그동안 소홀했던 블로그에 다시 정을 붙이게 될지 아직 모르겠지만, 이 작업들이 또 다른 계기가 되었으면 .. 2022. 8. 31.
미용실 판타지 [ 미용실 판타지 ] - 황호신 - 한 달 동안 머리 길러서 올게요 모를 듯 미소를 뒤에 남기고 미용실 문을 나선 순간 시간은 잠들고 꿈은 비로소 잠에서 풀려난다 빗과 가위가 더듬고 간 까끄러운 옆머리를 손으로 만지며 바리캉의 촉감을 상상해 본다 당신 혹시 나와 같은 환상 있었는지 한 달이 지나 미용실 문을 다시 열 때 잘 자라준 머리칼처럼 여전히 거기 서 있는 가위와 빗 난 항해에서 막 돌아온 선장처럼 의자에 앉는다 거울 속 장미꽃이 액자 안에서 웃다가 허무처럼 등 뒤로 다가서면 곰처럼 제 가슴만 두드리는 미용실 미련 판타지 2022. 1. 8.
둥근잎유홍초 / 무릎꽃 무릎꽃 - 연해 - 꽃이 나를 보는 각도와 내가 꽃을 보는 각도가 달라 나는 무릎에 꽃을 피우기로 마음 먹었다 언젠가 너의 꽃에 눈맞춤 하기 위해 무릎을 꿇었던 그날처럼 아름다움으로만 꽃을 보는 습관으로 미처 알아채지 못한 너의 한숨과 눈물방울이 밑둥쪽으로 몸을 굽혔을때 거기 있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만 너에게 꽃잎을 달아줄 줄 알아 그로 인하여 둘렀어야 할 거미줄과 흔들렸어야 할 풍력의 바람을 미처 계산하지 못했다 다 채워지지 못할 갈증으로 돌위에 가시위에 피멍 들도록 무릎꽃을 피우고서야 깨닫는다 가장 아름다운 꽃은 아픔의 꽃이라는 것을 2021. 12. 22.
결혼하는 아들에게 전하는 영상편지 2번째... 큰 아이 결혼시키면서 영상편지 올린지 5년만에 이번에는 둘째 아이 영상편지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결혼식은 한참 지난, 올해 2월 27일 가족, 친지, 친구들의 조촐한 축하속에서 치러졌지만, 아직도 위세를 떨치는 코로나 때문에 결혼식장에서 보여졌던 영상을 이제야 이곳에 올립니다. 결혼을 하는 당사자나 찾아온 축하객들에게 참으로 힘든 행사였지만, 그래도 행복한 모습들이었습니다. 아직도 꿈결처럼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는 둘째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아직 막내는 결혼 생각을 안하고 있어서 언제 다시 축하영상을 올리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첫째 결혼때 힘들어 하던게 무색하게 둘째는 좀 수월하게 행사를 치렀습니다. 코로나 와중이었지만, 아무래도 한번의 경험이 좀 더 여유롭게 만들어 주었지 .. 2021. 5. 16.
구슬이끼 / 기다림이 시간을 잃으면 [모성애] - 구슬이끼 기다림이 시간을 잃으면 - 연해 - 그리움이 된다 기다림이 시간을 잃으면 외로움이 된다 그리움이 길을 잃으면 잊혀진 시간과 거리는 추억의 단위로 수렴되지 못하고 기억과 망각의 어디쯤에서 갈림길처럼 만났다 다시 헤어진다 손을 휘저어 안개속 사랑과 그 후 하얀 몸짓만 허공에 가득한데 시간을 잃어 그리움이 된 기다림 이제는 시간도 자주 길을 잃네 Alone In The Dark - Vadim Kiselev 2020. 3. 29.
여행 (旅行) [청산도 가는 배 안에서] 자동차를 버리니 기차가 내게로 왔다 커다란 배와 버스도 오고 택시도 왔다 마치 먼 예전부터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들끼리 떨어진 간격은 걸어서 메웠다 때로는 일부러 걷기도 했다 걷다 보니 사람이 보였다 그동안 놓쳤던 풍경이 가까이 다가 오고 숨어 있던 보석같은 삶과 문화의 흔적들이 비로소 보였다 마치 서서히 열리는 꽃 안에 꽃술이 보이는 것처럼... 여행이었다 곡류 같기도 하고 황톳길 같기도 한... 여행 / 연해 [청산도 범바위] 여행이란 어디로가 아닌 누구랑 가느냐이다 멤버가 결정 되면 갈 곳이 어디인 지는 저절로 정해졌다 가야 할 그곳 보다 함께 할 시간이 더 좋아서 혼자였다면 굳이 영혼이라도 데려 갔을 것이다 뒤돌아 보았을 때 아무도 보이지 않으면 길가.. 2019. 1. 1.
바람을 보다 바람을 보다 / 연해 꽃잎의 흐름이 바람의 얼굴이었다 꽃은 마지막 서비스로 자신의 꽃잎을 날려 보이지 않는 바람을 군무로 그려내었다 제 몸 흔들며 날아가 바람을 묘사하는 꽃잎들의 스케치 보여도 보지 못했다 투명한 감각의 흐름 그들은 항상 무언가를 흔들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을 꽃이 없으면 낙엽을 떨구어서라도 기어이 제 형상 그려내는 그것 눈송이를 허공에 뿌려 잿빛 홀로그램으로 보여주는 그것 아침에 쌓인 눈은 밤새운 그들의 몸부림 이른 저녁 꽃잎이 다 떨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보았다 처마 끝 울리는 풍경소리가 바람의 목소리인 것을 Solamente El Amor - Nicolas De Angelis 2018. 2. 11.
낯선 별에서 만남 / 연해 낯선 별에서 만남 / 연해 다시 태어난다면 이 생은 틀렸고 다음 생이나 그 다음 생쯤 너무 늦지 않게 저 소금호수의 하늘에 희미한 마젤란성운의 어느 행성에 환생하고 싶다 아침마다 태양이 다섯개씩 뜨고 밤에는 일곱개의 달이 지는 곳 남천 하늘을 반 쯤 채운 은하수가 비껴 돌며 밤이 새도록 인생의 공회전을 이야기할 때 별빛이 흘러가는 언덕 하늘이 열리는 곳에 앉아 별꽃같은 마젤란 여인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문득 흐려진 눈에 지나간 지구별에서의 기억과 오리온 나선팔의 전생이 물 만난 압화처럼 다시 꽃피어 줄까 시작도 끝도 없이 휘감기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오래 기다렸던 사람이 바로 너였으면 좋겠다고 바람꽃같은 그녀의 하얀 입술에 말을 해줄까 언젠가는 서로에게 던져질 운명 너는 마젤란 나는 은하수, 그만큼의 .. 2018.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