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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밖에서/들꽃과 散文

병아리풀 / 돌아보면 아름다운 계절, 여름

by 緣海 2013. 9. 6.

[병아리풀] - 겸양

 

 

 

 

 

 

 

 

 

 

 

 

 

 

 

 

 

 

 

 

 

[병아리풀(흰꽃)] - 겸양

 

 

 

 

 

 

 

 

 

[돌아보면 아름다운 계절, 여름]
 
청춘이 소중한 줄 모르고 무심으로 세월을 낭비하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중년의 끝을 넘어서고 있었다.

어떤 나이 대에는 그 연륜만큼의 눈높이와 기대치가 있는 법이어서일까 그 당시에는 그 소중함을 모르고 지냈다.

몰랐을 뿐 아니라 그 시기에 흔한 욕구불만과 일탈에의 유혹으로 많이도 앓았다.

물론 아프니까 청춘이었겠지만, 끝 모를 눈물과 한숨, 좌절과 방황으로 나의 젊은 날은 어수선하고 눅눅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더 많았다.

본시 해찰에 빠지기 쉬운 성격인지라 좌고우면, 앞보다는 옆과 뒤에 더 시선을 뺏기다 좋은 시절 다 놓치고 남은 것은 후회와 아쉬움뿐인 것이다.

언뜻 뒤돌아보니 풋풋한 신록의 봄, 뭉게구름처럼 피어나던 여름 다 보내고 추상같은 겨울을 앞둔 낙엽의 계절이 코앞이다.

돈과 건강은 잃은 다음에야 그 가치를 알게 되듯, 좋은 시절 다 보내고야 생각해보니 그때가 아름다웠다.

하지만 강물과 세월은 한번 흘러가면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과거는 저만치 뒤에 서있을 뿐이고, 흘러간 물로는 뗏목하나 띄워 보낼 수 없는 것이다.

추억이 아름다운 건 세월이 그 시절을 윤색시켜서가 아니라 실제로 그 시절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리라.

다만 그때는 그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이다.

이렇게 우리는 누릴 때는 그 가치를 모르다가 지나가고 상실한 다음에야 아쉬워하고 후회하곤 한다.

하산해서야 비로소 그 산의 아름다움이 눈에 보이는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곁에 있을 때는 그 사람의 소중함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다 끝나고 떠나간 후에야 얼마나 사소한 일에 격분했었는지를,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그 사람을 소홀히 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있을 때 잘해’, ‘떠나보면 알거야’는 그러한 상황의 직설적 표현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물과 한숨, 그리움과 괴로움까지도 이루지 못한 사랑보다는 지켜내지 못한 사랑에 대한 연민과 자학에서 비롯됨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우리는 보내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그 사랑이 얼마나 소중했었는지를. 그리고 떠나오고 나서야 알게 된다. 그 시절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를...

하지만 모두 되돌아 갈 수 없는 ‘그 때, 그 사람’에 대한 부질없는 몸부림일 뿐이다.

여기 깨어지고 나서 안타까워하는 모든 사랑에 바친다. 세월이라는 해독제를, 그리고 추억이라는 환각제를...
 
어느 ‘가을날’, 독일의 시인 릴케는 참으로 위대한 여름을 보았다.

그는 왜 정작 여름에는 그 위대함을 발견하지 못하고 가을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을까?

올해는 계절이 빨리 진행될 것임을 다른 해보다 1~2주일씩 일찍 피어나던 들꽃으로 인해 알게 되었다.

야생의 식물이나 동물은 눈치가 빠른 편이다. 그래서 여름도 빨리 왔지만 가을도 빨리 왔지 않은가. 겨울도 다른 해보다 빨리 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여름은 너무나도 길고 지루했다.

여느 해보다 더 이른 5월부터 시작되었으며, 늦게 시작된 장마가 여름 전반을 지배했다.

어느 누가 올 여름을 보내면서 아름답다거나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서울 경기지방은 장마기간 내내 그치지 않던 폭우로 인해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으며, 제주를 비롯한 남부해안지방은 가뭄에 시달리다 못해 기우제까지 지내야 했다.

기후적 여건이 그러했다 해도 올 여름은 역시 위대했다.

움직일 때마다 땀으로 범벅이 되었으나, 그 진득한 땀은 등과 얼굴을 간지럽히며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늘을 벗어나기만 하면 불같은 햇볕이 등짝을 내려 쪼였으나, 그 뜨거움은 세포마다 생명의 환희를 느끼게 하는 불길이요 열기였다.

유난히도 많았던 사건 사고들은 그만큼 치열하게 세상이 살아 움직였다는 증거였다.

침잠했던 겨울과 고적했던 봄에 비해 비 맞은 여름은 비틀거리면서도 우뚝했고, 번뇌였지만 뜨거웠으며, 아픔이면서 절정이었다.

그런데 왜 그때는 그걸 몰랐을까. 왜 지나고 나서야 되돌아보니 아름다웠노라고 한탄하는 것일까.
 
모든 뒷모습은 서글프도록 아름답다.

나를 향해 웃음 짓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로부터 고개 돌려 굳어진 얼굴이기 때문이다.

가야할 때를 알고 돌아서는 이의 뒷모습은 비록 꽃이 아니라도 아름답다.

낙엽의 계절, 계절처럼 다시 되돌아온다면 모진 겨울추위도 참아 넘길 수 있겠지만, 다시 볼 수 없으리라는 아릿한 통증은 폐부를 꿰뚫고 뇌리를 저민다.

그리하여 모든 헤어짐의 미학, 해체의 미학이 완성된다. 그 미적 질주의 종점은 바로 죽음이다. 죽음은 그래서 엄숙하고 성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승화된 영탄은 반드시 그곳이 끝이어야 한다.

그것이 저 흘러간 강물이, 돌아오지 못할 세월이, 져버린 꽃이, 그리고 지나가버린 여름의 뒷모습이 더 아름다운 이유이다.

 

 

Magic Castle - Sasha Alexe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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