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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밖에서/들꽃과 散文

2015 첫 야생화를 찾아서

by 緣海 2015. 2. 20.

[복수초] - 영원한 행복, 슬픈 추억

 

 

 

 

 

 

 

매년 꽃은 피어나고, 꽃쟁이들은 또 그 꽃을 찾아 나선다.

매년 첫 출사지가 정해져 있고, 만나지는 첫 들꽃도 대개가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이제는 가만히 앉아서도 어디서 첫 꽃이 피었으며, 또 누가 그곳으로 움직이는지도 파악이 된다.

대개는 상황이 허락되는 대로 움직이지만, 뜻하지 아니한 만남도 있기 마련이다.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일찍 봄의 전령사들이 찾아오는 곳을 찾았다.

 

원일초(元日草)라는 이명답게 설날무렵이 되면 특유의 황금잔을 펼치는 복수초는

동양에서는 福壽草로서 오복과 장수를 불러오는 길한 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꽃말조차 영원한 행복이다.

그러나 서양에서의 복수초는 슬픈 운명의 상징이다.

아프로디테의 아들인 에로스의 큐피트 화살은 아프로디테에게 맞혀졌고,

아프로디테는 처음 본 아도니스를 사랑하게 된다.

사랑에 빠진 둘을 질투한 군신 아레스에 의해 사냥도중 멧돼지의 어금니에 찔려 죽게 된다.

이를 슬퍼한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의 피로 꽃을 만들고....

그래서 복수초의 서양 꽃말은 슬픈 추억이다.

 

 

 

 

 

[노루귀] - 인내, 믿음 

 

 

 

대개는 전시회를 치르느라 다른 사람들보다 한 템포 늦게 움직이기 마련이다.

더구나 올해는 예년보다 들꽃이 일찍 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시장에 묶인 몸이 마음만 달아오르다가 전시회 폐막이 되자마자 첫 야탐지를 향했다.

과연 그곳에는 기대했던대로 봄의 전령사들이 다 모여 있었다.

봄꽃이라야 몇가지 만으로 정해져 있고, 다양하진 않지만, 어느 계절에 보는 것 보다 반가운 것은

한겨울 기다림에 지친 마음에 찾아오는 들꽃이기 때문이리라.

 

올 첫 만남의 노루귀는 여전히 분홍색 볼을 가진 아름다운 아이였다.

무엇이 그리 수줍은 것일까. 만면에 홍조를 머금고 돌틈에서 가녀린 목을 내밀고 있다.

솜털 보송보송한 꽃대는 가는 빛에도 산란되어 영롱한 무지개를 만든다.

사진가들이 털이 많은 꽃을 좋아하는 까닭이다.

이보다 좀 더 기다려야 백노루귀가 보이고, 청노루귀는 한참 더 기다려야 얼굴을 볼 수 있다.

 

 

 

 

 

[변산바람꽃] - 기다림, 비밀스러운 사랑, 덧없는 사랑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면 가까운 곳에서도 다 만나질 수 있는 꽃들일텐데

과연 무엇이 그 먼 길을 달려 이 아이들을 마중하게 만드는 것일까...

하루라도 더 먼저 보고 싶어하는 마음, 바로 그 마음이 꽃을 향한 변치 않는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해마다 꽃쟁이들의 행렬이 자생지마다 줄을 잇는 것일 테고...

 

하얀 꽃잎 찬 바람에 흔들리며 가녀리고 수줍게 피어나는 변산바람꽃,

이 아이들 일컬어 변산아씨니, 변산츠자니, 미스변산이니, 변산댁이니 하는 이유가

이렇게 여리고 얼굴 하얀 미모의 꽃잎때문일 것이다.

꽃말, 덧없는 사랑처럼 잠시 꽃을 피우고, 잎을 펼치다가 숲이 우거질 즈음 사라져버리겠지만,

눈밭 속에서도 꽃잎을 펼치는 강인함과, 바람을 이겨내는 꿋꿋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변산바람꽃] - 기다림, 비밀스러운 사랑, 덧없는 사랑

 

 

 

 

 

 

 

 

 

 

 

며칠을 더 기다려 설날 아침, 드디어 동네에서도 변산바람꽃을 만날 수 있었다.

마중나가서 모셔오는 변산아씨와는 달리, 화관의 색변이가 다양하고, 더 가녀리고 아름답다.

누구든 동네 들꽃이 더 아름답게 보이겠지만, 우리 동네의 변산처자는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다.

더구나 피어나는 곳이 돌밭이라서 무너지는 돌틈 사이로 간신히 버텨내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다.

처음에 비해 자생지의 훼손이 너무 안타까워 군청에 휀스를 설치하여 보존할 것도 건의해 보았는데,

이곳이 개인 소유지라서 불가하다는 답변만을 들을 수 있었다.

 

아직 그늘에는 눈도 채 녹지 않고, 얼음이 그대로 얼어있는데, 벌써 2015년 들꽃시즌이 개막되었다.

이제 이곳에도 복수초며 너도바람꽃, 현호색과 노루귀들이 어울려 무리지어 피어날 것이다.

해마다 해마다 잊지 않고 그자리에서 피어주는 들꽃들이 고맙기 그지 없다.

앞으로 1년동안 들꽃레이스가 펼쳐질 것이고, 얼마나 많은 야생화들을 만나게 될지...

추운 이른 봄이나, 거미줄과 모기와 더위와 싸우는 여름철이나, 만산홍엽의 가을철까지도

많은 들꽃을 만나는 동안 내 영혼도 어느정도 그들을 닮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Flow Gently, Sweet Afton - Dan Gib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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