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詩 안에서/Poem & Photo

뿌리깊은 나무 / 눈내리는 소리

by 緣海 2012. 12. 10.

 [뿌리깊은 나무] - 충북 옥천군

 

 

 

 

 

 

 

 

 

 

 

 

 

 

 

 

 

 

 

 

  

 

 

 

 

대설답게 하얀 눈 하염없이 쏟아지던 날, 가눌 길 없는 그리움 하나 안고 그곳을 찾았습니다.

눈이 오면 행복하리라, 다짐했던 마음마저 꽁꽁 얼어버리고,

첫 발자국 남기며 강변을 거니는 동안, 알 수 없는 아픔은 저 깊은 수심에서부터 솟아 오릅니다.

어쩔 수 없이 눈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추억을 하나씩 꺼내 봅니다.

다행히도 추억은 따뜻한 시선으로, 밝게 마음을 비쳐주었습니다.

 

많은 곳에서 눈내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눈내리는 소리의 추억은, 다행히도 모두 내곁을 떠나가지 않고 남아있었습니다.

그 추억들을 모두 꺼내 보았습니다.

눈내리는 소리 들으며 부디 행복하시길....

 

 

 

 

 

 

눈내리는 소리

 

- 緣海 -

 

눈은 벗겨 허물을 드러내지 않고

눈은 덮어 상처를 감싸준다

 

눈은 알고 왔나 보다

허공에 부드러움 올올이 풀어 헤쳐

말없이 바람에 흩날리다가

말라버린 꽃의 기억위에 쌓이면

안으로 안으로 품는다는 것을

 

그리하여 눈길은

녹아 한방울 따뜻한 눈물이 되려고

마침내는 저리도 부드러운가

 

눈 내리는 소리조차

사르르륵

사르륵

 

2008. 02. 27

 

 

 

 

 

눈내리는 소리 2

 

- 緣海 -

 

가슴께를 지나가는 중이다

눈내리는 소리

정수리로부터 흘러내린 서늘함이

시선을 좇아 불면에 머물더니

마침내 허물어지는 빙산처럼

후두둑 흩어지는 그리움

너를 향하는 무언의 마음이

아득한 지상으로 내리다

목덜미를 지나 어깨를 지나

쌓이지 못해 머뭇거리며

아릿한 통증으로

가슴께를 지나가는 중이다

눈내리는 소리

 

2008. 02. 29

 

 

 

 

 

눈내리는 소리 3

 

- 緣海 -

 

오래 전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연인들의

가슴에 다독이는 한숨의 소리

 

먼 곳의 임을 그려

물망의 옷을 짓는

옛 여인의 손에 흐르는 실비단 소리

 

정한의 마음 전하려

밤새워 죽청지 하얗게 펼쳐놓고

새벽에야 구르는 사연의 소리

 

꽃샘의 추위 사이로

차가운 적설을 들추고

두리번 피어나는 홍매화 소리

 

세상의 모든 소리없는 소리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소리

세상 어디든 머물지 못하는 소리

 

2008. 03. 03

 

 

 

 

 

 

눈 내리는 소리 4

 

- 緣海 -

 

그리움이 내려와 하얗게 쌓이던 날

먼 산은 하루 종일 침묵했다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음표들이

소리를 내며 오선지에 쌓여갈 때도

먼 산은 안개속에서 침묵했다

 

침묵은 무게가 아니라 시간이었다

하얀 눈이 무량히 허공을 망설이다

먼저 시든 낙화 위에 조용히 앉았을 때

문득 가슴속에 똑딱거리던 초침 하나

 

그대 생각이 가볍게 나풀거리던 날

허공에 흩날리던 음률 눈으로 흘기면

꽃은 자리를 가리지 않고 떨어지고 있었다

가다가 주저앉는 그곳에서 들릴 듯 말 듯

이미 저문 생을 아프게 다독이고 있었다

 

저녁 구름이 저물다가 제 몸 불태우고 나면

그제서야 먼 산, 어둠속에서 홀로 일어나

제 몸 흔들며 긴 울음 삼키고 있었다

 

2009. 01. 28

 

 

 

 

 

 

눈 내리는 소리 5

 

- 緣海 -

 

눈 내리는 소리에

가슴 한 쪽이 무너졌다

 

무너진 담장 너머로

폐가의 안마당에 흘낏

한 때는 진지했을

속곳이 널브러지고

한 때는 범접 못했을

안방문은 떨어져

 

하얗게 내리는 눈 소리에

고막에 금이 가는 밤

 

어두운 동공에 별이 내리고

별 내리는 소리에

남은 가슴도 무너졌다

 

2009. 01. 29

 

 

 

 

 

눈내리는 소리 6

 

- 緣海 -

 

生의 단면을

날카롭게 가르고 지나가는

벼리어진 호흡이 내는

거친 排氣音

 

아아 그날

나는 왜 혼자였던가!

 

2010. 03. 10

 

 

 

 

 

눈내리는 소리 7

 

- 緣海 -

 

벌어진 꽃잎위로 눈송이 스치네

난 아무 소리 듣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며 숲속에 있네

 

무엇이 눈물만큼 아름다울까

꽃이 피어남은 신의 축복이요

사랑은 사람에게 주어진 선물임을

 

사랑에도 소리가 있다면

눈내리는 소리와 같을 것이니

고요한 숲속에서 꽃잎 벙글어지는

 

그 위에 눈은 슬프도록 쌓이고

비로소 사랑이 눈을 뜨는 소리에

두려움과 설레임에 밤새 뜬 눈

 

그 눈에 어리는 눈물같은 소리

그 소리에 걸릴 호흡 하나도

눈내리는 소리와 같을 것이네

 

2010. 03. 14

 

 

 

 

 

눈내리는 소리 8

 

- 연해 -

 

이것은 나만의 비밀이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소실점에서

내게로 달려오는 눈길

그 길에 첫 발자국 내어

그대 오는 소리

들을 수 없어서

가슴에만 울린다는 것

 

이것은 나만의 비밀이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소실점으로

바람 한 점 안섞인

온전히 하얀 색으로만

눈내리는 소리

들리지 않아서

마음에만 울린다는 것

 

2011. 01. 08

 

 

 

 

 

눈내리는 소리 9

 

- 연해 -

 

세월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다

멈추는 곳에 내 청춘 있을까

깃에 묻은 눈을 털고

파르르 떠는 심장의 파열음

나는 내 가슴에 동심원을 그리고

날아온 화살을 맞는다

 

평생을 그려온

나이테의 중심에서 사랑은 시작되고

연륜의 끝으로 멀어질수록

굵어진 주름살의 간격

흰 눈은 소리없이 머리 위에 쌓이네

건너온 거리만큼

지나간 시절은 아름다웠을까

 

내가 쏜 것은 젊음이었느니

시위의 침묵을 감고 흐르는

눈내리는 소리만 남기고

날아간 세월의 슬픈 울음소리

내 화살은 과연 어느 과녁에서 멈출까

 

2012. 01. 03

 

 

 

 

눈내리는 소리 10

 

- 연해 -

 

눈내리는 모습이 바람부는 모습 닮아

눈내리는 소리는 바람소리

 

흔들리며 다가오는 눈송이처럼

바람에게 온 너

다시 바람에게 가는 나

 

바람은 눈보라 뒤쪽에서 불어 오고

잠시 침묵에 머물다

다시 길위로 떠나가느니

그 흔적의 끝은 길을 하얗게 덮는다

 

그렇게 휭하니 눈내리는 소리

비어있는 들판을 건너간다

한때의 욕망을 기억하며

들리지 않는 너의 목소리 찾아서

 

하늘이 낮아지는 곳에 속삭임 있다

허공을 가득 메운 무성음

하얀 행렬은 귓바퀴로 흘러

일시에 나에게 왔던 것

다시 너에게 가는 눈속의 바람소리

 

2012. 02. 04

 

 

 

 

눈내리는 소리 11

 

- 연해 -

 

하늘 수심 깊은 곳까지

눈송이 뿌려 놓고

나는 로버트 킨케이드의

긴 편지를 읽는다

 

눈은 행간에 내려앉으며

그의 심중 깊은 곳

간절했을 목소리 하나

낮은 언어로 속삭인다

 

호수 심연 깊은 곳까지

하얀 하늘 펼쳐 들고

나는 프란체스카의 유서처럼

흩어지며 화폭 가득

눈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눈물 하나 한숨 하나

가져가진 못해도

이 세상 다 하는 날

영혼만은 눈송이 되어

다가가고 싶은 소망

 

어쩌면 너와 나

눈송이와 눈송이로 만나

서로에게 눈빛 던지고

시든 꽃잎에 스러지고 마는

애닯은 소리이고 말지라

 

2012. 12. 10

 

 

 

 

 

 

 

 

Bilitis Generique / Sarah Bright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