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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안에서/Poem & Flower

입하 무렵 / 나도수정초

by 緣海 2024. 5. 10.



<  그대 떠난 빈들에 서서 - 에밀레 >

 

 

 

 

 

 

 

 

[  입하 무렵  ]

 

- 연해 / 황호신 -



지금까지 봄이었는데 이제부터는 여름이라 한다
어디쯤에 선을 그어 놓았는지
달력에만 존재하는 그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지막 봄비가 송홧가루를 걷어갔다

계절과 작별중인 봄꽃이 자꾸 쳐다 본다
사람 보내기 서투른데 꽃 보내는데는 익숙하겠나
은방울꽃은 줄지어 잎그늘로 숨었다

폭우의 기억과 함께 숲길 걷다 보면
물묻은 발자국이 뒤따라 온다
버석이던 숲이 일순 조용해졌다
운무가 발자국을 삼키며 따라 오고 있다

신기루처럼 아련히 나도수정초 숨어 피었다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더니
햇빛 들면 불 켜놓은 양초처럼 존재감을 드러낸다
저들은 신비주의가 무언지 아는 거지

이제 너무 많이 노출된 내 마음 가려줄
토란잎 하나 잘라 들고 다녀야겠다
양산 겸 우산으로

 

 

2024. 05. 10. 입하 무렵 / 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