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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밖에서/들꽃과 散文

노루발풀, 매화노루발

by 緣海 2013. 6. 18.

[노루발풀] - 소녀의 기도

 

 

 

 

 

 

 

 

 

 

 

 

 

 

 

[매화노루발] - 소녀의 기도

 

 

 

 

 

 

 

 

 

 

 

 

[장마철 단상]

 

예전, 내 어릴적 살던 집은 논 가운데 있는 외딴 집이었다.

사방이 물논이고 동네로 통하는 길이 집앞으로 나있는 외에는 섬처럼 외부와 고립된 집이었다.

여름이 찾아오고 장마철이 되면 정말로 집이 이 되곤 했다.

누런 황톳물이 집 앞뒤로 넘실대고, 물이 빠지기 전까지는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수해대책에 이골이 나신 아버님께서는 뒤란과 장독대 사이에 깊게 고랑을 파셨다.

우리 키의 한 길이 넘던 그 도랑 벽으로 동그란 먼지버섯이 잔뜩 매달려 있던 생각이 난다.

토방과 마루는 높이고 부엌문 밑의 문턱은 높게 만들어 물의 침입을 막았다.

부엌 바닥은 오돌토돌 엠보싱으로 돋을새김해서 유사시 물이 들어와도 뒷문 근처에 고이도록 했다.

물이 많이 고이면 뒷문으로 바로 퍼내기만 하면 되도록 만드셨다.

집 본채의 사방으로는 높게 토방을 쌓고 물길을 두어 배수에 철저를 기하셨다.

그래도 만약시를 대비해 집 옆모퉁이마다 바짝 마른 토탄을 쌓아서

물이 들어오면 먼저 토탄이 젖도록 했다. 젖은 토탄은 나중에 말리면 되었고.

울타리는 튼튼하게 짚으로 이엉을 엮어 두르고, 빙 둘러 습에 강한 포플러나무를 심으셨다.

그 이유는 포플러나무가 습기를 잘 빨아들이는 나무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잔뿌리가 뻗어 흙이 쉽게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또한 튼튼한 포플러나무가 버텨주어 울타리가 물에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포플러나무는 빨리 자랐고, 다 크면 성냥공장에서 와서 벌목해 가기도 했다.

봄철에 한바탕 봄비가 휩쓸고 지나가면 마당에 송충이 비슷한 꽃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그때는 그게 포플러의 꽃인줄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개암나무 수꽃과 비슷했다.

실제로 송충이 비슷한 애벌레들이 마당 가득 떨어져 있었던 날도 있었다.

그렇게  그 나무가 빙 둘러싸고 있던 우리집을 동네사람들은 포플러나무집이라 불렀다.

포플러나무 사이마다 무게나무라 불렀던 무궁화나무를 많이 심으셨다.

그 무궁화나무는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회초리로 쓰이기도 하고,

무궁화꽃 잔뜩 핀 마당은 나라사랑의 산 교육장이 되기도 했다.

 

아무리 물난리 대책을 철저히 세워놓았다 해도, 장마철이 되면 괴로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사방이 습지인 논 한가운데 있다 보니 연일 습기와의 전쟁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다.

장농 안쪽에는 전면적으로 탕이 나고(곰팡이 났다는 말의 사투리), 비누가 물러져서 녹아내렸다.

빨래를 제대로 해 입을 수 없으니 옷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말로 못할 지경이었다.

집이 논 한가운데 있다 보니 온갖 벌레, 곤충들이 함께 살자고 모여 들었다.

비만 오면 온갖 개구리와 밍맹이라 불렀던 맹꽁이들이 얼마나 시끄럽게 울어대던지

당시 광석라디오를 만들어 포플러나무에 안테나 올리고, 복층건전지 연결하여 간신히 듣던

서해방송 임택근 아나운서(나중에 MBC사장이 됨)의 목소리는 그 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다.

어중간한 뱀 크기보다도 더 커 보였던 지렁이들이 시퍼런 광택을 내며 마루까지 올라올 기세였고,

홍수났다가 물이 빠지면 마당 가득 붕어와 송사리, 메기, 빠가사리 등이 펄떡거리기 일쑤였다.

덫을 놓아 쥐잡는 일이 일과가 되었고, 덫에 놓는 미끼는 설탕물 먹인 고구마조각이 최고였다.

그러나 덫에 치인 쥐의 튀어나온 눈을 보고 기겁한 어머니때문에 덫 대신 쥐약으로 바꿔야 했다.

고구마 조각에 회색 쥐약을 묻혀 마루 밑에 종이를 깔아 몇개씩 던져 놓고 다음날이 되면

그 종이에 유서처럼 발자국 어지러이 남겨놓고  정작 쥐는 찬장 위나

찬장 안 반찬그릇 속에서 죽어있어서 어머니를 또 기겁하게 만들곤 했다.

농약에 쫓긴 벼멸구나 이화명충 나방들이 집안 가득 몰려들었으며,

이를 노린 거미들이 스파이더맨처럼 처마 밑 구석마다 웅그리고 앉아 있었다.

얼마나 먹이 생태계가 풍요로웠는지 스파이더맨들은 하나같이 뚱뚱한 네가지 스타일이었고...

그러나 이 모든 어떤 것들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무시로 일어나는 뱀의 출몰이었다.

뱀들은 집안에 들어오는 개구리 등을 노리고 집안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니더니

급기야는 쥐를 다 잡아먹고 쥐구멍 속에서 번식까지 하며 겨울을 나기에 이르렀다.

견디다 못한 아버님께서는 어느날 머리를 수건으로 질끈 동여매고 한자루 들고 뱀 소탕에 나서셨다.

그날 하루 종일에 걸친 소탕작전 끝에 올린 전과는 가마니에 가득 넘친 뱀의 사체들이었다.

토탄더미속에 둥지를 틀고 있던 몇십마리 뱀들을 한꺼번에 생포했고,

흩어져 달아나는 뱀들에게 낫을 휘두른 결과 반토막난 뱀들만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쥐구멍에 한꺼번에 들어가려는 뱀들의 꼬리를 두손에 잡고 당겼으나 워낙 힘이 세

결국 낫으로 꼬리는 자르고 머리토막은 놓치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전설로 남았다.

 

그렇게 어릴적 추억과 삶의 곤궁함이 바람벽마다 두꺼운 벽지처럼 더께더께 붙어있는 집,

태어나서 12년 정도를 살았던 이 집에 관한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할아버지와 큰아버지로부터 분가한 아버님께서 두번째만에 자력으로 마련하신 집.

그러나 지금은 헐려지고 논이 되어버린 그곳, 그곳에 가면 기억조차 머물 곳이 없어진다.

이 집에서 나고 초등학교 마칠 때까지 살다가 중학교 입학할 무렵에야 이사를 가게 된다.

그때 이사간 그 집이 분가한 아버님께서 첫번째로 세들어간 집의 바로 뒷집이며,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여 도회지로 나오기 직전까지 살았던 아버님의 세번째 집이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상속받아 아직도 나의 명의로 남아있으며, 지금은 세를 놓았다.

 장마철이 되어 종일 내리는 비를 보고 있노라니 그 시절 그 집에서의 추억이 빗방울처럼 자꾸만 돋아난다.

한국의 우기 장마철, 아들은 아버님의 뒤를 이어 다섯번째 집인 아파트에서 장마를 보내고 있다.

지금의 아파트에서의 생활은 그 시절에 비하면 얼마나 천국같은 생활인가.

모름지기 매사에 감사할 일이며, 비슷한 곤궁을 치러냈을 수많은 아버님들과 그 시절에 경의를 표할 일이다.

 

 

 

Old Romance(O.S.T. Sonate vom guten Menschen) - Svirid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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