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詩 안에서/Poem & Photo

세량지,원정리,보청천 / 겨울강에 눈물을 묻고

by 緣海 2012. 12. 25.

[세량지]

 

 

 

 

 

겨울 세량지가 궁금하여 먼 길 찾아나섰다.

산벚꽃 화려하던 봄날, 북적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상상했던, 눈 하얗게 쌓인 풍경도 남도지방이라 기대에 못미치는 정도였다.

더구나 물이 고여있어야 할 저수지에 물이 없었다.

내년 봄을 위하여 저수지를 정비하고 있었던 것,

 

나를 채우고 있는 물이 바닥을 드러내면 나는 어떤 풍경이 될까.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 사람의 본 모습이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여러 겉치레로 치장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겉모습들이 모두 치워졌을 때의 본 모습,

그 모습이 거슬리지 않는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아닐까.

물빠진 세량지는 미의 근원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원정리]

 

원정리 들판을 지키고 서있는 느티나무 한그루,

그 들판의 겨울 풍경이 궁금하여 흰 눈 내린 날 찾아나섰다.

이곳은 기대했던만큼 눈은 쌓여있었지만, 해는 이미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적막에 휩싸인 논둑을 이리 저리 홀로 다니며 사진을 담는 동안,

늦가을, 누렇게 익어가는 벼의 물결사이로 오고 갔던 수많은 발길들이 느껴졌다.

아름다움이란 이렇게 시차를 두고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었다.

 

나의 생에 겨울이 오고 하얀 눈이 쌓이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하여 갈까.

사람들이 또한 두려워하는 것은 세월이 바꾸어 놓을 모습의 변화인지도 모른다.

물이 빠지고 흰 눈 쌓인 세량지에 아무도 찾아주는 사람 없듯,

황금물결 사라지고 황량한 벌판의 원정리에 찾아오는 발길 없듯,

세상과의 소통이 사라지면 고통만 남는 것이 아닐까.

해질녘 원정리에는 고요한 하늘에 조각달만 외로운 느티나무를 동무해 주고 있었다.

 

 

 

 

 

[보청천]

 

 

 

 

 

 

세량지나 원정리 느티나무는 너무도 유명하여 사진좀 한다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곳, 보청천이 청산면에 닿기 직전의 황량한 강변풍경을 아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제철이 아닌 계절에는 찾아주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곳보다는,

알려지지 않았을지라도, 쓸쓸할지라도,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곳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차가운 겨울날의 하루를 돌아온 태양은 보청천에 마지막 빛을 던지고 있다.

강물은 얼어있고, 그 위에 쌓인 하얀 눈에 석양이 붉게 물들고 있다.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곳, 슬프지만 감미로운 것, 거칠어도 가야 하는 익숙한 삶의 모습들...

 

 

 

 

 

겨울강에 눈물을 묻고

 

- 연해 -

 

한 치 가슴 안쪽에 있는 말

꺼낼 수 없어

그저 속으로만 끙끙 앓다가

참지 못할 갈증

목마름이 목까지 물결치거든

겨울바람 흐르는

겨울강을 만나러 가자

 

하루는 꿈에서 살고

또 하루는 추억으로 견디다가

옻 오른 가슴

그 화닥거림 견디지 못하겠거든

고독이 강물 모양으로 얼어

핏빛으로 타는

해질녘 겨울강변에 가자

 

겨울 들판에 가슴을 열어

하얀 바람 들여도

영하의 설원에 다 쏟지 못할

불덩이 하나 있거든

저문 강변에 웅크리고 앉아

눈언덕에 눈물 묻고

무너지는 겨울강 울음소리 들을 일이다

 

 

 

 

 

 

Speak Of The Hearts / Danny Can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