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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안에서/Essay & Photo

노루귀 / 들꽃 예찬

by 緣海 2012. 3. 23.

[노루귀] - 인내, 신뢰, 믿음

 

 

 

 

 

 

 

 

  

 

 

 

 

 

 

[노루귀 흰꽃]

 

 

[노루귀]

 

꽃받침, 혹은 이른 봄 새잎이 노루의 귀와 닮은 꽃 - 노루귀

눈을 헤치고 나와 작은 꽃을 피우는 꽃 - 파설초(破雪草)

눈을 가르고 꽃대를 피워 올리는 꽃 - 설할초(雪割草)

노루귀를 닮고, 가늘고 긴 줄기를 가진 꽃 - 장이세신(獐耳細莘)

눈속에 피어난 모습이 사슴과 닮은 꽃 - 눈속의 어린 사슴

 

꽃말이 신뢰인 까닭은 꽃받침이 꽃잎 역할을 잘 하기 때문

꽃말이 인내인 까닭은 추운 겨울을 참고 견디어 이른 봄 가장 먼저 꽃을 피우기 때문

비슷한 다른 종으로는 섬노루귀, 애기노루귀가 있다.

 

 

 

 

 

 

들꽃 예찬

 

- 연해 -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돌아왔다.

돌아온 봄과 더불어 산과 들에는 함께 돌아온 온갖 생명들이 넘쳐난다.

그중 어디서나 피어있는 들꽃은 작고 소박하여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사람들이 보살피지 않아도 늘 제자리에서 꽃피우고 있다.

아니, 사람들 손길로부터 멀어져야 더 잘 생존하게 된다.

잘 보이지 않는 들꽃, 자그마한 그 친구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먼저, 크고 화려하면 들꽃이 아니다.

대부분의 들꽃은 작고 수수하며, 꽃 색도 눈길을 끄는 원색보다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흰색 계열이나 보라색 계열이 많다.

크기나 색을 포기한 대신에 향을 선택한 것은 들꽃의 생존을 위한 대안의 모색이다.

들꽃의 향은 일부 원예종처럼 진하거나 풍성하지 않고 은은하여 알아챌 듯 모를 듯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면서도 대부분의 곤충들을 잘 유인해 낸다.

크기도 무척 작은데다 발밑에 밟힐 듯 위태롭게 피어있어 처음 보는 사람은 손으로 짚어주기 전에는 그게 꽃인지도 잘 모를 지경이다.

접사렌즈로 들이밀어 확대해 보아야 그 아름다움의 미묘한 매력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다음, 이름이 한문 투이거나 로마자 표기이면 우리 들꽃이 아니다.

우리들은 근현대사의 굴곡 많은 삶의 과정을 겪으면서 소박하고 소중한 우리 고유의 말글살이들을 많이 잃어버렸지만,

들꽃은 아직 투박한 질그릇 같은 우리 이름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꼭두서니, 미나리아재비 등과 같은 정다운 이름들을 이젠 들꽃의 이름에서나 들어볼 수 있는 것이다.

며느리배꼽이나 사위질빵,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밥풀꽃 등의 꽃 이름에서는 우리 민족의 정서적 생활상을 엿볼 수도 있다.

또한 들꽃의 이름에는 유독 동물들의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노루발풀, 노루오줌, 노루귀 등의 노루, 괭이밥, 괭이눈, 괭이수염 등의 고양이,

그 외에도 제비, 강아지, 쥐, 여우, 까치, 까마귀, 꿩, 닭, 병아리, 황새, 사마귀, 노린재, 개구리, 다람쥐, 개미, 벼룩, 거북, 배암, 소 등

실로 다양한 이 땅의 동물들의 이름이 들꽃의 이름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식물인 들꽃에서 동물의 이미지를 연결시켜 내려고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끝으로, 재배되면 더 이상 들꽃이 아니다.

더러는 들꽃을 길들여 재배하기도 하지만, 들짐승을 길들이면 야성을 잃듯, 들꽃을 재배하면 들꽃으로서의 생명을 잃고 다시 야생에 적응하기 힘들어진다.

들꽃은 원래의 제자리인 산이나 들에 피어있어야 예쁜 꽃을 피우고, 고운 향기를 품으며, 세상을 생기 있게 만들어 놓는다.

들꽃 촬영을 겸한 탐사를 다니다 보면, 들꽃을 채취해간 흔적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꽃을 보기 위해서든 약으로 쓰기 위해서든 무분별한 남획은 환영받지 못할 뿐 아니라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기도 한다.

복수초처럼 금방 복원되는 꽃도 있지만, 깽깽이풀처럼 좀처럼 복원되기 어려운 꽃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계속 늘어만 가는 멸종위기종의 식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가져오는 건 들꽃의 아름다움만, 남기는 건 발자국만 있어야 하겠다.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맞이한 봄은 사계중 제일 먼저 시작되는 계절이다.

봄은 ‘보다’의 명사형으로, 봄이 오면 눈길을 잡아끄는 것들이 많아지기에 볼거리가 많아지는 계절이라는 뜻일 게다.

이 봄, 항상 우리 곁에 있으나, 주목받지 못했던 들꽃을 바라보는 즐거움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처럼,

보아주는 것만으로도 예쁘고 사랑스러워지는 것은 들꽃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며,

그렇게 잘 봄으로서 한 해의 시작도 잘 하게 될 것이다.

 

 

 

Ocean Isle - Tim Jan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