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 - 친절, 친구, 은퇴
[억새]
가을바람에 한가로이 손 흔들던 때가 좋았다.
그 후로 오랫동안, 차가운 바람 불고, 흰 눈은 두껍게 쌓여만 갔지.
진작 육탈되었어야 할 하늘거리던 몸매,
갈대는 순정이라지만 나 억새는 친절이다.
눈녹고 드러날 형체가 두렵지만, 한 해가 남긴 나투리,
봄바람 불면 이젠 은퇴하리, 푸른 기억속으로...
[은꿩의다리] - 평안, 순간의 행복
[은꿩의다리]
보랏빛 폭죽을 터뜨리며 숲속의 파티는 무르익었었지.
태양보다 뜨거웠던 지난 여름의 추억,
번개처럼 지나가버린 순간의 행복,
그 추억 머금고 흰 눈이 쌓이도록 나 여기 서있다.
봄이 올 때까지는 꺾이지 못해, 여기 서있어야 하는 이유는
내가 보듬고 있는 열매인 사랑의 추억,
[궁궁이] - 천궁
[궁궁이]
하늘 향해 시위를 당겨 쏘아 올리리,
줄기마다 가지마다 둥근 활이 되어 쏘아올린건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지난 여름의 사랑의 결실,
그 사랑 기억할 때마다 하늘에서 눈이 내렸어
이젠 훌훌 떠나 보내려 해,
지난 추억 아무리 아름다워도
봄바람 불도록 붙잡고 있는건 집착일테니까...
[검은종덩굴] - 정의, 딸과 사위를 위하여
[검은종덩굴]
열매만 보고 사위질빵이라 부르지 말아줘.
종소리 다 날려 보내고,
남은 홀씨가 사위질빵같지만 나는 검은종덩굴,
사위사랑은 곧 딸사랑일 거라는
속보이는 짐작이 아니더라도 그 사위의 눈길은 결국 딸쪽,
홀씨 다 날아갈 때까지 그 모습 붙잡고 있을거야.
딸과 사위를 위하여...
[쥐방울덩굴] - 외로움
[쥐방울덩굴]
여름엔 트럼펫, 겨울엔 낙하산,
뜨거운 햇볕 다 맞아가며,
긴 여름 하루종일 사랑을 연주했지
이제 빈 나무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낙하산 공중으로 떠오른다.
다 안고 떠나가리, 추억도 너의 모습도...
[갯버들] - 친절, 자유, 포근한 사랑
[갯버들]
모자는 벗어 던질거야.
자꾸만 근질거리는 바람결에
털모자 쓰고 있기 너무 갑갑해
귀마개 벗어 던질거야
시냇물소리 귓가를 간지럽히는데
세상 열리는 소리 더이상 외면할 수 없어
겨울강 언덕에서
- 연해 -
봄은 아직 기다려야 한다는데
마음이 먼저 봄마중 나간다
버들강아지도 나처럼 설레었구나
하얀 눈 아직 녹지도 않았는데
성급한 손길은 눈속을 헤친다
은꿩의다리도 나처럼 기다렸구나
시냇물소리 아직 들리지 않는데
두 귀는 쫑긋 개울로 향한다
얼음장 밑으로 겨울이 흐르는 동안
아하, 너희들도 나처럼 외로웠구나
그후로 오랫동안 / 신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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