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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밖에서/들꽃과 散文

팔봉산 양길리 감자꽃 풍경

by 緣海 2008. 5. 21.

 

 

 

 

 

 

 

 

 

 

 

 

 

 

 

 

 

 

 

 

 

 

 

 

 

 

 

 

 

 

 

 

감자꽃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1948년   권태응

 

〈감자꽃〉은 단순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진국이 우러나오는 수작이다.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다. 단순하고 명쾌하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드러냄이라는 진리와 더불어 종(種)의 명령에 순응하는 개체의 숭고함을 개시한다.

자주꽃 핀 데 하얀 감자가 달리지 않고, 하얀 꽃 핀 데 자주색 감자가 달리지 않는다.

무릇 생명 가진 것들은 그 종의 진실을 거스르지 않는다.

우리는 날마다 이 기적과 신비를 체험하며 이 우주 안에서 거대한 생명의 코러스에 참여하는 것이다.

 본디 감자는 페루볼리비아에 걸쳐 있는 안데스 산맥이 그 원산지다.

16세기에 유럽으로 건너온 뒤 18세기 말에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사람과 감자는 전략적 호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감자는 사람에게 식량을 보태주는 대신에 사람에게서 더 많은 지배 영역을 얻어낸다.

 여름 장마가 올 무렵 감자꽃이 핀다.

땅속에 숨어 사는 한해살이 풀 은자(隱者)는 "파보나 마나"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다.

이 당연한 사실 앞에서 시인은 놀라고 경탄한다.

  권태응(1918~1951) 시인은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때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1년간 옥살이를 한 기록이 있다.

그 뒤 폐결핵에 걸려 고향에서 요양했는데, 그때 시골 체험이 알알이 든 동시와 동요를 많이 내놓았다.

아이의 손길까지 귀히 빌려 쓸 수밖에 없이 바쁜 수확기 농촌의 일상을 엿보게 하는 시도 있다.

 

막대기 들고는

무엇하나?

벼 멍석에 덤벼드는

닭을 쫓고

 

막대기 들고는

무엇하나?

양지쪽에 묶어 세워둔

참깰 털고

 

 막대기 들고는

무엇하나?

뒤꼍에 오볼 달린

대출 따고

 

〈막대기 들고는〉.

아이는 양광에 마르는 벼의 알곡을 쪼려는 닭을 쫓거나 참깨를 털어야 한다.

  씨눈을 가진 감자알은 흙의 자양분을 끌어다가 둥글게 익는다.

이 성숙의 결과가 원만(圓滿)이다.

이 풍부한 땅의 부(富)를 산처럼 쌓고 인류가 공평하게 나눈다면 10억명의 사람들이 굶어 잠 못 드는 일은 없을 터다.

탐욕이라는 짐승들이 감자를 독점하려고 한다.

나는 태정이네 감자밭 둔덕에 쪼그리고 앉아 저 혼자만 잘살겠다는 이 짐승과

인류가 꿋꿋하게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1968년 충주 탄금대에 〈감자꽃〉을 새긴 노래비(碑)가 세워졌다.

 

                                                                                       시평 : 장석주.시인

                                                                              2008.5.16 조선일보에서 옮긴 글

 

 

추신: 감자, 배따라기를 쓴 소설가 금동 김동인 ( 1900-1951)의 부인 김경애 여사가

2008년 5월 15일 오전 10시 30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 감자꽃 / 최희경과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