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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밖에서/들꽃과 散文

그가 송별회장에서 눈물을 보인 이유

by 緣海 2008. 4. 26.

 

그가 송별회장에서 눈물을 보인 이유


며칠 전 송별연이 있었던 음식점에서의 일이었다.

여느 때처럼, 20여명의 발령을 받은 사람들이 차례로 일어나서 짧은 소감을 발표하고,

축하와 석별의 아쉬움이 교차하는 술잔들이 몇 순배씩 돌았다.


마침내 그가 내 앞에 앉아 술 못하는 나에게 술 대신 ‘칠성소주’를 권하고,

나는 그에게 ‘처음처럼’ 한 잔을 따라 주며 전근을 축하 하노라는 덕담을 해주었다.

그는 사택에서 같이 사는 사람이며, 나하고 같은 나이이고 직급도 같다.

그는 여태껏 집에서 많이 주고받았던 얘기들을 시작하였다.


그가 1년 전에 지금 내가 있는 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다른 곳에서 혼자 살았었다.

성격이 다소 무뚝뚝하고 붙임성이 없는 그는 이곳을 싫어하며 무척이나 대전을 그리워했다.

내가 해주는 밥을 먹게 되면서 비로소 위장의 평화를 되찾은 그였다.


담배는 해도 술은 즐기지 않던 그가 제법 술을 마셨다.

한참을 얘기하더니 갑자기 펑펑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나는 옆에 있던 물수건을 건네 닦게 했는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흐른다.

다른 사람들이 도와서 겨우 겨우 수습할 수 있었다.

갑자기 짠한 마음과 함께 불쌍하단 생각이 속에서부터 밀려 온 건 당연지사.


내가 맨 처음 신입사원으로 발령받아 왔을 때 그는 제법 숙련된 직원이었다.

신입 특유의 허둥지둥 으로 헤매고 있을 때, 바위처럼 우뚝 자리 잡은 그가 부러웠다.

말없이 성실하게 그는 맡은 바 일을 한 치의 틈도 없이 해내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 돌고 돌던 그를 이곳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예전의 모습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속 빈 강정과도 같이 그는 여러 가지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그에게도 문제는 있었지만, 그에게는 사람 복이 없었다.


각 과별로 다시 2차들을 가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생맥주집에서 다시 모였다.

그는 다른 과여서 같이 못 갔지만, 내내 그의 생각에, 그가 보인 눈물 때문에 심란했다.

덕분에 못 먹는 술이지만 맥주 500을 두 잔이나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자정 넘어 갑자기 문밖이 소란스러웠다.

나가 보니 그가 번호를 못 눌러 문을 못 열고 있었다.

안에 들어선 그는 몸을 못 가눌 정도로 만취되어 있었다.

그동안 쌓였던 걸 풀어내듯, 온갖 욕설을 내뱉는 그를 옆에서 부축하여 방으로 옮겼다.

우선 자라고 이불을 덮어준 다음, 내 방으로 돌아오니 잠이 다 달아나 버렸다.


다시 아침에 밥을 해놓고 그를 부르니 도저히 밥을 못 먹겠다고 한다.

나중에라도 먹으라고 상을 차려놓고 생각하니 갑자기 산에 올라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어딜 갈까. 지난번에 가다만 요술동산을 생각해내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보니, 밥은 그대로 있고 그는 없어졌다.

그는 주식을 하다가 IMF때 일거에 빈손이 되었다.

평소에 RV차 타고 다니며 취미생활 하고 싶다며, 나를 무척이나 부러워하던 그였다.

이 전에 그하고 그다지 친한 편은 아니어서 집안이 어떤지는 잘 모른다.


젊어서는 잘못되더라도 재기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나이 먹어서는 삐끗하기만 해도 그야말로 나락이다.

그는 그런 면에서도 무척이나 세상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이제 원하던 곳으로 전근을 가는데도 눈물을 보이는 이유는,

그곳에 가더라도 일년 후에는 또 다른 곳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이렇게 옮겨 다니며 매일처럼 표시 안 나게 낡아만 간다.


어제 금요일이니 아마도 그는 집에 갔을 것이다.

바라건대 단 한순간이라도 그에게 평화로움이 깃들길....


한 사람의 성격은 그의 태도를 결정하고, 태도는 세상이 그를 받아들이는 척도가 된다.

그에게도 문제가 있고, 그도 그것을 안다.

하지만 타고난 성격은 부모도 못 고쳐주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성격을 어쩌지 못한다면 사람이라도 잘 만나야 한다. 이것이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의 복이고,

이보다 더한 복은 없는 것이다. 그 인연이 바다였으면....


다시 산에 가고 싶다.

지금 산에 가면 하늘을 덮은 먹구름도 내 발걸음을 어쩌진 못할 것이다.

 

♧ Eleni Karaindrou / Adagio

안개속의 풍경


Topio Stin Omichli / Landscape In The Mist, 1988 
안개속의 풍경 - 아다지오(Adagio)
음악 : 엘레니 카라인드로우 (Eleni Karaindr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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