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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밖에서/들꽃과 散文

안녕이라 말하지마

by 緣海 2008. 5. 13.

안녕이라 말하지마

 

애틋한 슬픔에 젖기 쉬운 밤이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먼 불빛들은 은방울꽃처럼 흔들렸다.

밤 풍경에 떠 있는 작은 불빛 하나에 한 사람의 사연이 담겼구나, 그 사연과 그 불빛이 모여 세상을 이루는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찡하였다.

누군가의 불빛 하나가 완전히 꺼지면 사연도 언제 있었는가 싶게 잊혀지리라. 그렇게 존재감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살다 가는 인생이다.

지나고 나면 힘든 일도 언제 있었는가 싶게 그 리얼리티는 희미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생기있게 사는 가운데서도

슬픔을 느끼는 건지 모른다.

"아가야 잘 자. 안녕."

"엄마,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그냥 조용히 자. 안녕 하면 엄마도 못 보고 숙모도 삼촌도 못봐. 할머니, 할아버지도 못봐"

 

- 신현림의 싱글맘 스토리 중에서 -

 

 

 

어제는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열반에 머문다는 것은 열반에 속박되는 것이다. - 원효 -]

황동규 시인의 소유언시에 부제로 붙어있는 이 글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몰라

시가 유언시이니만큼 열반을 주제로 하다보니 원효의 글귀를 인용한 것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초파일이며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어제, 몇달간 몸담았던 모임에서 출사 겸 정모가 있었다.

워낙 사람들 모임과 그 자리에서의 대화를 즐겨하는지라, 며칠 전부터 마음이 들떠 있었다.

그러나 어제는 그 모임의 마지막 참석 자리가 되고 말았다.

 

은방울 꽃을 찾아서 숲을 헤메고, 준비해간 음식으로 떠들썩한 숲속 만찬이 진행되면서

마음 속은 저 원효의 짤막한 경구 한 구절을 되뇌이고 있었다.

처음 대면하면서부터 감지된 왠지 모를 경계심, 회피 당하는 느낌, 꾸민 듯 과장스런 몸짓과 말투들........

 

 

 

계곡 하나에 온통 은방울꽃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약간은 제 날짜가 지난 듯, 색이 바래버린 꽃송이들이 많았지만, 이제 막 피어나는 깨끗한 꽃송이들도 많았다.

살짝만 흔들어도 맑은 종소리가 울려 나올듯한 모습으로 줄지어 열려 있으면서 계곡을 온통 하얀 물결로 채워놓고 있었다.

 

'잊자. 다 잊어버리자. 내가 어제 잠을 설쳐서 과민한 생각이 든 탓일게지...'

'뭘 바라 여기까지 온 건 아니잖아. 은방울꽃들과 함께 그냥 이 순간들을 즐기자고....'

 

 

 

살면서 참 여러 모임들을 가졌었다.

학교나 직장 등 의무적인 것들은 제외하고라도,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취미활동 등....

그 많은 모임들을 관여하면서 깨닫게 된 하나의 진리는 과열되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체적인 것으로도 그렇고 개인적인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너무 재미있던 나머지, 나도 몰래 빠져들어 한 발자국 물러서서 바라볼 여유가 없을 때, 그때가 가장 위험스런 순간인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빠져들어가는 때가 종종 있다. 이번같은 경우이다.

그래도 슬펐다. 너무 애착을 가졌었기에, 포기하기에도 너무 힘이 들었다.

그러나 밤새 생각해보고 또 생각하다가 조용히 정리 버튼을 눌렀다.

혹시 잘못된 결정은 아닐까. 남겨진 어떤 사람들한테는 상처를 주는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대로 견디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 힘들었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

 

신현림도 가슴아픈 이별을 겪지 않았던가. 그의 책을 보면 온통 이별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들로 가득 차 있지 않던가.

 

 

 

 

열반에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냥 죽음? 그런데 그런 의미로 불가에서 열반이라 칭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누군가 지적한대로 탐욕과 노여움, 어리석음의 소멸, 이것을 일러 열반이라 하였을까?

 

극락왕생이라던가 윤회론을 주장하는 불가에서의 열반의 의미는 이런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냥 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것, 이 세상을 정리하고 저 세상으로 떠나가는 것,

그러니까 그것은 시작도 아니요 끝도 아닌 끝없는 윤회의 한 고리일 뿐이다.

그 매듭에서 파생되고 복잡해지고 어지러워지고 혼란스럽다가 일거에 정리하고 다른 매듭으로 건너가는,,,,

 

 

 

그래서 열반은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움이요. 복잡함에서 떠나 단순함을 추구하는 한 단면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열반에 들어 머뭄은 곧 그 열반에 속박당하는 것이려니, 진정한 열반은 열반조차도 훌쩍 떠나 보내야 하는 것이다.

원효는 열반을 얘기하면서 속박의 대칭점을 생각했을 것이다. 속박의 대칭점은 곧 자유로움이 아니겠는가.

열반이란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 자유로이 훌쩍 떠나가는....

 

 

 

그 핑계는 아니었다. 그러나 난 어제 그 경계를 훌쩍 뛰어 넘었다.

이형기 시인도 그러지 않았는가.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어제는 바로 내가 가야 할 때였다. 아니 오히려 늦었다. 지난번 그런 조짐을 미약하게나마 감지했을 때 그때 떠나야 했다.

또 한 발 늦은 관계로 남은 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아프게 할 수도 있을 것임을....

 

 

 

 

그러나 나의 마무리는 아직 남았다. 이제부터 진정한 이별을 위한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을 때다.

열반에 드는 심정으로  어제를 보냈다면, 오늘은 열반에조차 머무르지 않고 또 한번 훌쩍 떠나야 한다.

그러한 떠남에 왜 안녕! 이란 인사가 필요한가. 그래서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라는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안녕이라고 말함은 미련의 표출이다. 누군가 붙잡아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안녕이란 말조차도 없이 홀연히 떠나야 한다.

 

 

 

슬픔의 감정, 연민의 감정도 모두 미련의 한 찌꺼기일 뿐이다. 그저 떠나 보내자. 안녕이란 말도 없이.

저 아이, 서윤이가 말한 안녕의 의미, 그 의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안녕이란 말 하지 않아도 잠은 자야 한다.

헤어져야 할 때도 있고, 못만나고 지내야 할 경우도 있다. 모든건 다 똑같은데 안녕이란 말은 그 의미를 곱절로 슬프게 한다.

그래서 아이도 안녕이라 말하지마 라고 부탁했을 것이다. 꼬마가 설명은 못한다 해도 느끼는 감정은 다 똑같은 것이다.

그런데 가수 이승철도 같은 의미로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라는 노래를 불렀을까?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것은 원림회라는 고등학교 동문모임의 행사가 수원 원천저수지 주변에 있는

원천유원지의 한 호젓한 가든(숙박도 할 수 있는)에서 있었을 때였다.

저녁 먹고 대화 시간 끝에 여흥시간이 주어졌는데, 후배 이원철이던가 지금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그 당시 한창 대 유행이었던 이 노래를 잘 불렀던 기억이 난다.

가사를 보면 처음 만나 한창 사랑을 이루어가는 남녀 커플이 혹시나 잘못되어 이별하게 될까봐 헤어질 때

말하는 안녕이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간절한 애원이다.

 

 

 

좀 더 사랑을 붙들고 싶어하는 마음, 이것은 곧바로 미련이다. 그래서 가수가 부르는 안녕은

서윤이가 말하는 안녕하고도 차이가 있다.

모름지기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이런 미련조차 남기지 말고 마음에서부터 보내주어야 한다.

그래서 안녕이란 말조차도 하지 말고 웃으면서 보내주어야 한다.

세상사에 만남과 이별에 상처가 어디 없겠냐만, 서투른 이별은 상처를 오히려 더 키우고 만다.

이별은 산뜻하게, 쿨하게, 떠나 보낼 건 떠나 보내고, 떠나와야 한다면 미련없이 떠나 오고,

이것이 내 블로그에서 말하는 "만남과 이별, 인연의 바다에서는 그저 밀물과 썰물인 것을...." 인 것이다.

 

 

 

이제 새로운 날이 밝았다. 이 긴 이별의 편지를 쓰는 일도 이제 마무리 지어야 한다. 새 날을 위하여.

슬픔의 강물도 바다에 이르면 더이상 흐르지 않는다. 밀물과 썰물이 되어 속절없이 오갈 뿐이다.

나는 열반을 뛰어넘고 싶다. 열반에 머무르고 싶지 않다. 그것이 어제 이별을 한 진정한 이유이다.

 

 

 

이탈한 자가 문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글/김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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