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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안에서/Essay & Photo29

얼레지와 노루귀의 사랑 이야기 [어느 꽃같이 고운 봄날이었습니다] 겨우내 얼었던 개울물도 풀려서 여기저기 웅크리고 있는 바위 사이를 소리내어 흘러가고,가지 끝마다 새 잎들이 돋아나고, 그 사이에서 새가 울어대는 아름다운 계절이었지요.계곡 물을 따라 떠내려 가다가 돌들 사이에서 잠시 멈춘 나뭇잎 할아버지가 얘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개울가 바위틈에 얼레지 소녀가 살고 있었단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며 햇살에게 말을 거는 그 소녀는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봄날이 좋았습니다. 괜히 지나가는 꿀벌에게 웃음도 지어 보이고, 먼 산을 바라보며 까치발을 딛기도 했지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수선화처럼 하루를 보내기도 했답니다] 얼레지소녀는 모든게 궁금했습니다. 봄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저 산 너머에는 누가 살고 있.. 2008. 4. 2.
명시속의 명소를 찾아서 / 주용일의 단속사지 물앵두나무 단속사지* 물앵두나무 詩 주용일 사진 緣海 해 바뀌어 가장 이르게 익는다는 열매 물앵두를 속세와 끊어진 절터 단속사지에서 만났다 상전벽해, 단속사 터는 지금 마을이 들어서고 그곳에 늙은 부처와 보살들이 굽은 등 껴안고 산다 세상 떠돌다 한 쪽 귀퉁이 허물어져 찾아온, 이곳에서 처음 만나는 물앵두 나무가 위로라도 하려는 듯 눈인사 건넨다 붉은 눈인사 받아먹고 피가 도는 나는 어쩌면 천년 전쯤 이 절의 사미였는지도 모른다 사랑에 눈이 멀어 탑돌이 여인과 도망쳤다 이제야 돌아온 파계의 사미인지 모른다 뒤늦은 뉘우침처럼 단속사지에 와서 나는 무릎을 꿇는다 밤 깊어 돌아가라 등 두들기는 노파에게 떠밀려 또 옛 파계의 사미처럼 그곳을 빠져나올 때 내 손에 물앵두 그 붉은 것이 쥐여있다 사랑으로 나를 유혹한 여인에게.. 2007. 12. 2.
바람과 함께 오른 팔봉산 소유언시(小遺言詩) - 황동규- 열반에 머문다는 것은 열반에 속박되는 것이다 - 원효 1 살기 점점 더 덤덤해지면, 부음(訃音)이 겹으로 몰려올 때 잠들 때쯤 죽은 자들의 삶이 떠오르고 그들이 좀 무례하게 앞서갔구나 싶어지면, 관광객도 나대지 않는 서산 가로림만(灣)쯤에 가서 썰물 때 곰섬(熊島)에 건너가 살가운 비린내 평상 위에 생선들이 누워 쉬고 있는 집들을 지나 섬 끝에 신발 벗어놓고 갯벌에 들어 무릎까지 뻘이 차와도 아무도 눈 주지 않는 섬 한구석에 잊힌 듯 꽂혀 있다가 물때 놓치고 세상에 나오지 못하듯이. 2 그냥 가기 뭣하면 중간에 안국사지(安國寺址)쯤에 들러 크고 못생긴 보물 고려 불상과 탑을 건성 보고 화사하게 핀 나무 백일홍들 그 뒤에 편안히 누워 있는 거대한 자연석(自然石) 남근을 만나.. 2007. 9. 30.
안면도 천상병 시인의 옛 집 장마후 이젠 게릴라 폭우까지, 도대체 우기는 언제 끝날까 천상병은 비오는 아침의 신선감(新鮮感)을 노래했는데 짜증이 나는 걸 보면 천상병의 감각이 부러워진다 이불마다 눅눅하고, 빨래는 안 마르고 구름과 습기에 지쳐갈 무렵 아직도 하늘엔 시커먼 구름이 꽉 차있는데 가방 속에서 무료해졌을 카메라를 챙겨 들고 무작정 나섰다 나오고 보니 모자도 안쓰고 나왔다 "오늘 얼굴 좀 타겠구만..." 부석을 지나 안면도로 들어가기 전 우선 마검포에 들렀다 세찬 바람, 누렇게 뒤집혀진 바닷물 그래도 몇몇 해수욕객들은 있었다 그리고 어딜 가나 만날 수 있는 낚시꾼들 안면도로 들어서기 전 칼국수로 점심을 때웠다 오늘은 안면도를 영목항까지 샅샅이 훑으리라 영목항까지 가는 간선도로에서 갈라지는 길들은 모두 들어가 보았다 그리하여 .. 2007. 8. 10.
시 속의 명소를 찾아서 - 탑정호의 엘파소 1. 시 속의 명소를 찾아... 유명 시인들의 시를 감상하다 보면 특정한 지역이나 장소, 인물 등이 시어로 등장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풍경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들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감정의 내면적 풍경을 옮겨놓은 서정시의 경우에도 이러한 지명이나 자연의 경치에 빗대어 기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전 미군의 이라크 공격이 한참이던 제 1, 2차 걸프전 당시에는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시어로 하는 시들이 다수 등장하였었다. 필자도 '바그다드 카페'라는 졸시를 만들어 본 적이 있지만, 실제로 바그다드 카페는 대전 유성의 궁동에 존재하고 있었다. 나중에 혹 그 시를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만, 그 카페에 찾아가 그 자리에 앉아서 그 시를 읽어보면 훨씬 더 시인의 마음.. 2007. 5.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