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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안에서/Essay & Photo

안면도 천상병 시인의 옛 집

by 緣海 2007. 8. 10.

장마후 이젠 게릴라 폭우까지, 도대체 우기는 언제 끝날까

천상병은 비오는 아침의 신선감(新鮮感)을 노래했는데

짜증이 나는 걸 보면 천상병의 감각이 부러워진다

이불마다 눅눅하고, 빨래는 안 마르고

구름과 습기에 지쳐갈 무렵

아직도 하늘엔 시커먼

구름이 꽉 차있는데

가방 속에서 무료해졌을

 카메라를 챙겨 들고 무작정 나섰다

 

나오고 보니 모자도 안쓰고 나왔다

"오늘 얼굴 좀 타겠구만..."

 

부석을 지나 안면도로 들어가기 전

우선 마검포에 들렀다

세찬 바람, 누렇게 뒤집혀진 바닷물

그래도 몇몇 해수욕객들은 있었다

그리고 어딜 가나 만날 수 있는 낚시꾼들

 

안면도로 들어서기 전 칼국수로 점심을 때웠다

오늘은 안면도를 영목항까지 샅샅이 훑으리라

영목항까지 가는 간선도로에서 갈라지는 길들은 모두 들어가 보았다

그리하여 들린 데가 대야도 습지

그런데 대야도에 들어서다 보니 왠 표지판이 하나 서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천상병 시인 옛 집

그래서 대야도를 "시인의 섬"이라고 부르는 듯 했다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량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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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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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천상병

아침 깨니 부실부실 가랑비 내린다.
자는 마누라 지갑을 뒤져
1백50원을 훔쳐 아침 해장으로 나간다.

막걸리 한 잔 내 속을 지지면
어찌 이리도 기분이 좋으냐?

가방 들고 지나는 학생들이
그렇게도 싱싱하게 보이고
나의 늙음은 그저 노인 같다.

비오는 아침의 이 신선감(新鮮感)을
나는 어찌 표현하리오?

그저 사는 대로 살다가
깨끗이 눈감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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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악

 천상병

 

이것은 무슨 음악이지요? 
새벽녘 머리맡에 와서 
속삭이는 그윽한 소리. 


눈물 뿌리며 
옛날에 듣던 이 곡의 작곡가는 
평생 
한 여자를 사랑하다 갔지요? 

아마 그 여자의 이름은 클라라일 겝니다.

그의 스승의 아내였지요? 

백년 이백년 세월은 흘러도 
그의 사랑은 아직 다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새벽녘 
멀고 먼 나라 
엉망진창인 이 파락호의 
가슴에까지 와서 울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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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   名

 

천상병

 

뭐라고
말할 수 없이
저녁놀이 져가는 것이었다.

그 시간과 밤을 보면서
나는 그때
내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봄도 가고
어제도 오늘 이 순간에도
빨가니 타서 아, 스러지는 놀빛

저기 저 하늘을 깍아서
하루 빨리 내가
나의 無名을 적어야 할 까닭을

나는 알려고 한다.
나는 알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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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가는 길

천상병


한줄기 지평(地平)의 거리는,
산에서 또 다른 산을 향한,
하늘의 푸른 손이었습니다.


불가항(不可抗)의 그 손에 잡힌 산산(山山)의 호수에
언제 새로운 소식(消息)이 있어,
들판 위에는 무수한 길이

실로, 무수한 길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내일 나는 바다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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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천상병

 

가을은

다시 올 테지.

 

다시 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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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물

 

천상병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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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달을 쳐다 보며 은은한 마음.
밤 열시경인데 뜰에 나와
만사(萬事)를 잊고 달빛에 젖다.

우주의 신비가 보일 듯 말 듯
저 달에 인류(人類)의 족적(足跡)이 있고
우리와 그만큼 가까와진 곳.

어릴 때는 멀고 먼 것
요새는 만월(滿月)이며 더 아름다운 것
구름이 스치듯 걸려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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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무

 
천상병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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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가지에서 가지로
나무에서 나무로
저 하늘에서
이 하늘로,

아니 저승에서 이승으로
새들은 즐거이 날아 오른다.

맑은 날이나 궂은 날이나
대자대비(大慈大悲)처럼
가지 끝에서
하늘 끝에서....

저것 보아라.
오늘따라
이승에서 저승으로
한 마리 새가 날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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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신록

 

천상병

 

1월의 신록은 너무 신선하다.
녹색은 눈에도 좋고
상쾌하다.

젊은 날이 새롭다
육십 두살된 나는
그래도 신록이 좋다.
가슴에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나는 늙었지만
신록은 청춘이다.
청춘의 특권을 마음껏 발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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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속

 

천상병


한 그루의 나무도 없이
서로운 길 위에서
무엇으로 내가 서 있는가
새로운 길도 아닌
먼 길
이 길은 가도가도 황톳길인데

노을과 같이
내일과 같이
필연코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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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던 한 시인이 천국으로 떠났다.
조의금이 몇 백 걷혔다.
생전에 그렇게 「큰돈」을 만져본 적 없는
시인의 장모는 가슴이 뛰었다.
이 큰 돈을 어디다 숨길까. 퍼뜩 떠오른 것이 아궁이였다.
거기라면 도둑이 든다 해도 찾아낼 수 없을 터였다.
노인은 돈을 신문지에 잘 싸서 아궁이 깊숙이
숨기고서야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시인의 아내는 하늘나라로 간 남편이
추울 거라는 생각에 그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 푸르스름한 빛이 이상했다.
땔나무 불빛사이로 배추이파리 같은 것들이 팔랑거리고 있었다.
 
조의금은 그렇게 불타버렸다.
다행히 타다 남은 돈을 은행에서 새 돈으로 바꾸어주어,
그 돈을 먼저 떠난 시인이 「엄마야」며 따르던
팔순의 장모님 장례비로 남겨둘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은 늘 「엄마」의 장례비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 슬픈 동화 같은 이야기는 시인 천상병 가의 이야기이다.
평생 돈의 셈법이 어둡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왔던 시인이었다.
지상에 소풍 왔던 천사처럼 순진무구하게 살다간 시인의 혼은 가고
남은 자리마저 그런 식으로 자유로와지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천상병 시인을 사랑했다.
우리에게 달라붙어 있는 세속과 악의 혐의가 짙을수록
그 어린아이 같은 시인을 그리워했다.
지상에서 가난했고 고초 당했던 그 시인은
그러나 천국에 가면 땅은 선한 것이었다고,
지상은 아름다왔노라고 전할 것이라고 썼다.
악은 그의 머릿속에도 없었고 가슴에도 없었다.
악에 관한 한 그는 지진아인 셈이었다.
 
사물과 사람을 투명하게 관조하여 그려내었던 천상병은 1967 년 7월
친구 한 사람이 동백림사건에 연루되면서 엉뚱하게도 기관에 끌려가
전기고문을 받게 된다. 그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평생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 된다.
뜻밖의 고초와 충격으로 그의 정신은 황폐해졌고 어느 날
거리에 쓰러져 행려병자로 분류되어 시립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어디에선가 죽은 것으로 생각해
유고 시집 '새'를 출간하고….
 
유독 어린아이를 좋아했던 시인은 훗날 아내에게
“전기고문을 두 번만 받았어도 아기를 볼 수 있었는데…”하며
아쉬운 마음을 술회하곤 했다 한다.
동백림사건 이후 그의 시세계는 죽음 저편을 바라보는 초월의식과 함께
종교적 원융무애의 어린아이 같은 세계로 나아간다.
엄청난 고초를 겪었지만 절망과 증오와 비탄이 아닌
맑고 투명한 어린아이의 세계를 열어 보인 것이다.
그 점에서 그는 성자였다.
 
병구완에 헌신적이었던 아내 목순옥을 그는
하느님이 숨겨두셨던 천사라고 했다.
그는 생전에 고문 후유증으로 활발한 걸음걸이가 아니었지만
인사동에 나오기를 즐겨했다.
아니, 인사동 골목의 아내가 하는 작은 찻집
「귀천」에 나오기를 좋아했다.
귀천에 나오면 무엇보다 하루 종일 아내를 볼 수 있어 좋고,
문인, 화가, 연극인 같은 다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 하였다.
하지만 빨간 옷 입고 오는 여자나
안경 낀 남자는 무척이나 싫어했다고 한다.
무슨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싫어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아이 같은 일면이다.
빨간 옷 입거나 안경 낀 손님이 오면“문디가시나 문디가시나”하며
아내를 원망했다는 것이다.
 
그의 행복에 대한 고백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다.
“하루에 용돈 2천 원이면 나는 행복하다…
내가 즐겨 마시는 맥주 한 잔과 아이스크림 하나면 딱 좋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을 좋아했다.
바늘귀를 통과하는 낙타가 있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다 부자가 되려고 하니 딱한 노릇이다.
굶지 않기만 하면 되는데…
내게 만일 1억 원이 생긴다면
나는 이 돈을 몽땅 서울대학교에 기증하겠다. 장학금으로…”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처럼
가볍게 살다가 시인은 이제 인사동을 떠나 천국으로 갔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귀천’)고
작별을 고하며.

[인터넷에서 얻어온 글]

 

 

 

 



<  Love Is - Andan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