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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안에서/Essay & Photo

바람과 함께 오른 팔봉산

by 緣海 2007. 9. 30.

소유언시(小遺言詩)

 

- 황동규-

열반에 머문다는 것은 열반에 속박되는 것이다 - 원효

1
살기 점점 더 덤덤해지면,
부음(訃音)이 겹으로 몰려올 때
잠들 때쯤 죽은 자들의 삶이 떠오르고
그들이 좀 무례하게 앞서갔구나 싶어지면,
관광객도 나대지 않는 서산 가로림만(灣)쯤에 가서
썰물 때 곰섬(熊島)에 건너가
살가운 비린내
평상 위에 생선들이 누워 쉬고 있는 집들을 지나
섬 끝에 신발 벗어놓고
갯벌에 들어
무릎까지 뻘이 차와도
아무도 눈 주지 않는 섬 한구석에
잊힌 듯 꽂혀 있다가
물때 놓치고 세상에 나오지 못하듯이.

2
그냥 가기 뭣하면
중간에 안국사지(安國寺址)쯤에 들러
크고 못생긴 보물 고려 불상과 탑을 건성 보고
화사하게 핀 나무 백일홍들
그 뒤에 편안히 누워 있는 거대한 자연석(自然石) 남근을 만나
생전 알고 싶던 얘기나 하나 묻고
대답은 못 듣고.

3
길 잃고 휘 둘러가는 길 즐기기.
때로 새 길 들어가 길 잃고 헤매기.
어쩌다 500년 넘은 느티도 만나고
개심사의 키 너무 커 일부러 허리 구부린 기둥들도 만나리.
처음 만나 서로 어색한 새들도 있으리.
혹시 못 만나면 어떤가.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
나무, 집과 새들을 만났다.
이제 그들 없이 헤맬 곳을 찾아서.

4
아 언덕이 하나 없어졌다.
십 년 전 이곳을 헤매고 다닐 때
길 양편에 서서 다정히 얘기 주고받던 언덕
서로 반쯤 깨진 바위 얼굴을 돌리기도 했지.
없어진 쪽이 상대에게 고개를 약간 더 기울였던가.
그 자리엔 크레인 한 대가 고개를 휘젓고 있다.
문명은 어딘가 뻔뻔스러운 데가 있다.
남은 언덕이 자기끼리의 대화를 기억하고 있을까.
지난날의 갖은 얘기 이젠 단색(單色) 모놀로그?

5
한 뼘 채 못 되는 시간이 남아 있다면
대호 방조제까지만이라도 갔다 오자.
언젠가 직선으로 변한 바다에
배들이 어리둥절하여
공연히 옆을 보며 몸짓 사리는 것을 보고 오자.
나이 늘며 삶이 점점 직선으로 바뀐다.
지난 일들이 빤히 건너다보이고.

6
곰섬 건너기 직전
물이 차차 무거워지며 다른 칸들로 쫓겨다니다
드디어 소금이 되는 염전이 있다.
산다는 것은 스스로든 억지로든
칸 옮겨 다님,
누군가 되돌아가지 못하게 제때마다 물꼬를 막는다.
자세히 보면
시간에도 칸들이 쳐 있다.
마지막 칸이 허옇다.

7
물떼샌가 도요샌가
긴 발로
뻘에 무릎까지 빠진 사람은
생물로 치지 않는다는 듯이
팔 길이 갓 벗어난 곳에서 갯벌을 뒤지고 있다.
바지락 하나가 잡혀 나온다.
다 저녁때
바지락조개들만
살다 들키는 곳.

8
어둠이 온다.
달이 떠오르지 않아도
물소리가 바다가 된다.
밤새가 울 만큼 울다 만다.
왜 인간은 살 만큼 살다 말려 않는가?
생선들 누웠던 평상 위
흥건한 소리마당 같은 비릿함,
그 냄새가 바로 우리가 처음 삶에,
삶에 저도 모르게 빠져든 자리!
그 속에 온몸 삭히듯 젖어
육십 년 익힌 삶의 뽄새들을 모두 잊어버린다.
이 멈출 길 없는 떠남! 내 안에서 좀체 말 이루려 않는
한 노엽고, 슬거운 인간을 만난다.
곰처럼 주먹으로 가슴 두들기고
밤새처럼,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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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의 소유언시(小遺言詩)를 읽고 있노라면 이곳 충남 서산 일대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하다.

 

그런데 이분이 이 지역에서 유명한 가로림만, 웅도, 안국사지, 개심사, 대호방조제, 염전들을 얘기하면서도

어찌 팔봉산은 빼놓으셨는지 의아해진다. 하긴 이 시는 황동규 시인이 살다 살다 삶이 무덤덤해져서

10년전에 헤매고 다닌 이곳을 기억하고, 훨씬 더 젊었을 그때, 그리하여 방황도 훨씬 더 길었을 그때에

이곳 풍광들로부터 상당히 위안 받았었음을 기억해내고, 삶이 점점 더 덤덤해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곳을 한번 돌아볼 것을 권하는 시이다. 그러나 그때도 듣지 못했던 대답을 이곳에서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60년 익힌 삶의 뽄새들을 모두 잊을만 하다면, 이곳 여행이 어떠한 추억으로 남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풍경들을 한 눈에 모두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팔봉산에 올라가면 될 일이다.

 

*   *   *   *   *   *        *   *   *   *   *   *        *   *   *   *   *   *        *   *   *   *   *   *     

 

저며도 저며도 해소되지 않는 가슴 속 아릿한, 한 줄기 미역 줄기같은 상실감을 씻어내려고 팔봉산에 올랐다.

아니 어쩌면 잊기 위해, 모든 걸 잊어보기 위해 산에 올랐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도 유언시일 것이다.

 

팔봉산이 있기에, 팔봉산이 우뚝 솟아있기에, 육지 사이를 파고든 가로림만은 가로림만답게 깊어질 수 있었으며,

이곳에서 건너다 보이는 가야산, 석문봉, 백화산, 도비산들은 한 결 더 산답게 솟아있을 수 있었다.

가까이는 팔봉산 여덟 봉우리와, 멀리는 고파도, 웅도 너머 경기도의 대부도 영흥도까지 훤히 보이고,

삶이 잊혀지고, 죽음의 문턱에 한 결 더 다가설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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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봉산 오르는 길을 바람이 따라왔다.

바람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황동규님의 유언시를 읽고 또 읽는다.

 

황동규 시인은 돌아가신 아버님과 동명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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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Place Called Morning - Bill Dougla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