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詩 안에서/Essay & Photo

위대한 여정의 첫 걸음

by 緣海 2015. 7. 14.

[수정산장 '포인트'에서의 "갑사를 위한 조망"]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무리 먼 여행길도 처음 시작하는 첫 걸음이 있기 마련이지요.

머나먼 바다에 이르는 장강의 굽이치는 흐름도

이름 없는 계곡, 남상(濫觴)의 연원(淵源)으로부터 비롯됨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일생동안 수많은 여정을 헤쳐 나갈 한 인간의 행로도

막 걸음마를 시작한 첫 발길로부터 시작되는 것 아닐런지요.

 

바이칼의 알혼섬을 향한 여정의 첫 걸음도

바로 이곳, 수정산장의 마당 한 귀퉁이, 느티나무 아래에서 시작되었음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좌로부터 수정산장에서 제일 가까운 수정봉,

부처님 마음처럼 둥글둥글한 삼불봉과 자연성능을 거쳐,

부처님 옆얼굴을 닮은 관음봉, 그리고 하늘에 맞닿은 맨 우측의 연천봉에 이르기까지...

"잠시 우산을 꺼 주실 것"을 부탁하신 원장님의 혜안대로

부채살같은 계룡의 장대한 흐름을 맨몸으로 껴안는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갑사 철당간지주에 마음을 매달고]

 

서사적으로 시작되었던 만남이 서정적으로 되어갑니다.

마음속에서 바이칼을 지우고 그 자리에 그윽함과 고요함을 대신 채워나갑니다.

 

한참을 물러서야 비로소 한 앵글에 다 들어오는 저 높이처럼

진정 소중한 존재는 조금 떨어져서 보아야 온전히 보여질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물러나서 본 그 꼭대기에 당(幢) 대신 걸어두었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당간의 원형인 솟대의 끝에 새 한마리를 앉혀

그 옛날 알혼섬의 샤먼바위에 있었다는 환인의 정원으로 날려보내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는 이 여정의 끝에서 만년의 세월을 거슬러 날아온

갑사의 도리이(鳥居)들을 환국 선조들의 맑은 눈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부리야트의 솟대끝에 고즈넉히 앉아있는 새들의 자태는 얼마나 아득함일런지요.

 

 

 

 

[적막함의 끝에서 대적전(大寂殿)을 만나다]

 

法身卽寂化身雄(법신즉적화신웅)

얼마나 고요해야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얼마나 사무치게 외로워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적막함의 흔적을 따라 올라간 길의 끝에서 대적전을 만납니다.

언제나처럼 법신(法身)의 시간들은 적막하지만,

그 자취를 찾아간 현신(顯身)들은 화사하고, 웅장하고, 요란하고, 바쁘기만 합니다.

내일 돌아가는 길은 양기(陽氣)의 길을 버리고,

계룡의 연봉이 아련히 보이는 우산봉 뒤쪽의 음기(陰氣) 탱만한 길을 찾아 돌아 가렵니다.

다만 한 순간이라도 진정 고독할 수 있다면,

太一眞如大覺空(태일진여대각공)

세상의 본질인즉 비어 있고 헛됨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본래 비어있는 그곳 바이칼에

채우는 삶에 익숙한 마음을 버리고 오기 위함일 것입니다.

 

 

 

 

[정지된 흐름, 그 흐름에 실려 나도 흘러갑니다]

 

흘러가는 것은 강물만이 아닙니다.

시간도 흘러가고, 우리네 인생도 거기 휩쓸려서 흘러갑니다.

넉넉히 비어있는 법당의 뒤쪽으로 산이 흘러갑니다.

흘러가기 좋게 적당히 둥글어서 격류가 보이지 않습니다.

뾰죽뾰죽한 봉우리는 난류(亂流)를 만들어 편안치 않습니다.

둥글어서 부드러운 저 흐름에 내 인생도 맡기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이렇게 높은 쪽을 등지고 흘러가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아늑하고 편안합니다.

내게로 흘러오는 모습은 걱정이요 두려움입니다.

사람도 맞이할 때는 심박수 증가하고 떨림과 설레임이 있지만,

보낼 때는 잦아드는 허전함에 나른함만 남아 새벽별처럼 빛을 잃어갑니다.

그래서 서정주 시인도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이 아닌,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노래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오늘 저녁엔 저 흐름을 창밖으로 보내면서 홀로 잠들 것입니다. 

 

 

 

[그 흐름을 완상(玩賞)합니다. 그윽합니다.]

 

흘러가다 굳어 정지된 흐름, 어쩌면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흘러왔으며, 어디로 흘러가는가.

바이칼은 신화입니다. 은유입니다.

그곳에서 시작된 흐름이 한반도에서 멈춰 섰습니다.

길이 끊긴 바닷가에서 길을 묻습니다. 那路(나로)도입니다.

어느 길에 몸을 맡겨야 하는지 묻습니다. 任那(임나)입니다.

바다 너머까지 건너간 이들은 끊임없이 회유를 시도합니다. 마치 연어처럼.

그렇게 흘러갔고, 다시 흘러옵니다.

 

그 흐름의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이번 여행입니다.

그 흐름의 시원을 상상하는 것, 먹먹함입니다. 아련함입니다.

거슬러 올라간 그곳에 바다가 있다 해도 놀라지 않겠습니다.

인연은 따라 올라가도, 따라 내려가도 바다이니까요.

 

 

 

 

[꽃이 꽃을 담아주고 있습니다.]

 

적막하여 텅 비어버린 듯한 산사에서 몰입의 한 경지를 봅니다.

아름다움에 몰입하는 한, 그대 또한 이미 한송이의 꽃입니다.

 

 

 

 

[시선을 좇아 산위에 머무르다]

 

태풍 찬홈이 가까워 오면서 폭풍전야처럼 고요한 하늘에 종일 빗방울이 걸렸습니다.

우산을 받쳐 든 두분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어디쯤일까요.

그 눈길을 따라 가다 보니 아하, 저 산 능선에 부처님 한분이 하늘을 보고 계십니다.

이목구비의 결이 뚜렷하고 목선이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천상의 그 표정에 그곳이 연천봉일지 관음봉일지는 무의미한 궁금증이겠지요.

 

세상 모든 사는 일들이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만,

그 봄이란 것이 다 같은 봄은 아닙니다.

같은 풍경을 놓고도 시선에 따라서 전혀 다른 풍경이 되고, 전혀 다른 의미가 됩니다.

그 근원은 마음이겠지요. 그래서 눈은 마음의 창이 되구요.

같은 산봉우리의 능선이 보는 시선에 따라 부처님도 되고,

어떤 이에게는 악보가 되며, 어떤 눈에는 산수화가 되기도 합니다.

알혼섬의 샤먼바위는 우리 시선에 무엇으로 다가오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여러분 모두가 꽃입니다. 이 세상은 한그루의 꽃나무입니다.]

 

꽃만 피고 지는게 아닙니다.

세월만 왔다가 가는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 꽃처럼 피었다 지고,

세월따라 왔다가는 가곤 합니다.

 

조금 못생겼으면 어떤가요. 그윽한 향이 있잖아요.

조금 작으면 어떤가요. 더 가까이 대지를 느낄 수 있잖아요.

필 때는 하늘 향해 얼굴을 열지만,

질때는 결국 땅으로 되돌아 옵니다.

 

17송이의 꽃들이 시간을 따라 길을 나섭니다.

 

 

 

 

[부도탑들 앞에서 백만송이 장미를 꽃피워냅니다.]

 

백만송이 장미 / 명월당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때만 피는 꽃 백만송이 피워 오라는
진실한 사랑할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별 나라로 갈수 있다네

 

진실한 사랑은 뭔가 괴로운 눈물 흘렸네
헤어져간 사람 많았던 너무나 슬픈 세상이 었기에
수많은 세월 흐른뒤 자기의 생명까지 모두다 준
비처럼 홀연이 나타난 그런 사랑 나는 알았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별 나라로 갈수 있다네

 

이젠 모두가 떠날지라도 그러나 사랑은 계속 될거야
저별에서 나를 찾아 온 그토록 기다리던 이 있네
그대와 나 함께라면 더욱 더 많은 꽃을 피우고
하나가 된 우리는 영원한 저별로 돌아가리라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별 나라로 갈수 있다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별 나라로 갈수 있다네

 

 

 

 

[부도탑 사이 사이 다시 인연을 엮어 주십니다.]

 

인연 / 심지

 

약속해요 이 순간이 다 지나고 다시보게 되는 그날
모든걸 버리고 그대곁에 서서 남은 길을 가리란걸
인연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내 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고달픈 삶에 길에 당신은 선물인 걸
이 사랑이 녹슬지 않도록
늘 닦아 비출께요

취한 듯 만남은 짧았지만 빗장 열어 자리했죠
맺지 못한대도 후회하지 않죠 영원한건 없으니까
운명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내 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하고픈 말 많지만 당신은 아실테죠
먼 길 돌아 만나게 되는 날
다신 놓지 말아요

이 생에 못 한 사랑
이 생에 못 한 인연
먼 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나를 놓지 말아요

 

 

 

[여행은 되돌아 오기 위해 떠납니다.]

 

청라언덕에 선 것처럼 넉넉해진 마음으로 노래를 듣습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박태준 曲, 이은상 詞  [동무생각]

 

서정에서 다시 서사로 되돌아 옵니다.

 

사람들은 왜 여행을 떠날까요. 누군가는 되돌아 오기 위해서 떠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다시 떠나기 위해서 되돌아 오는 것 아닐까요.

 

저는 이번 여행에서 다시 야만인이 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과학적으로 야만해진 현대에 비하면 그 시절의 야만은 얼마나 소박하며 낭만적이었을까요.

총이 더 야만일까요. 활이 더 야만일까요.

 

연어가 모천을 찾아 계류를 거슬러 오르듯,

저는 아득한 그 옛날, 저의 DNA가 시작되었을 그 지점과 그 시간을 향해 떠납니다.

그 지점에 어떤 바다같은 인연의 원류가 있음을 미리 짐작하고 갑니다.

 

저한테 주어진 선물같은 이 세상, 이 시간들은 얼마나 소중하며 현묘한 것일지요.

이 공간과 시간을 반납하고 돌아가기 전에 충분히 음미하고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으면...

 

군인은 전장에서 죽고, 농부는 논밭에서 죽는 것이 큰 영광이듯,

우리가 길에서 다시 저 세상으로 되돌아감이 얼마나 행복한 일일런지요.

우리 모두는 결국 길을 가는 사람들이잖아요.

 

죽으면 죽으리라....

얼마나 현명한 포기이며, 얼마나 가뿐한 체념인지요.

사는 날까지는 온 힘을 다해 살듯, 죽으면 미련없이 죽으리라...

 

평생에 걸쳐 그토록 아끼고 닦아냈던 자그마한 몸뚱이 하나.

그곳에서 재가 되어 바이칼에 뿌려진다 한들 무엇이 아까우리요. 무엇을 망설일까요.

 

능소화 꽃송이 하나 그저 한숨 소리에 툭 땅으로 떨어지고,

지나가던 행인은 무심히 그 곁을 지나갑니다.

 

삶과 죽음이 그런 것 아닐런지요.

 

 

 

 

Juliette - Chris Spheeris

 

그리고 이 곡, 크리스 스피어리스의 줄리엣이라는 곡입니다.

Chris Spheeris는 요즘 IMF한테 국가채무불이행, 즉 디폴트를 선언한 그리스 출신의 뉴에이지 뮤지션입니다.

크리스 스피어리스는 면도 안한 까칠한 얼굴이 매력적인 까칠남입니다.

바로 이 사람이지요.

 

 

 

크리스 스피어리스 말고도 유명한 뉴에이지 음악가들이 많은데요.

랄프 바흐나 톨앤톨, 어네스트 코타자르, 파리보르츠 라치니, 필 쿨터, 지오반니 마라디 등의 음악은

꼭 들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