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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안에서/Essay & Photo

위대한 여정 (블라디보스톡 및 시베리아 횡단열차)

by 緣海 2015. 11. 21.

 [위대한 여정, 하늘의 길 땅의 길]

 

 

 

 

 

2015. 07. 26.

 

하늘에는 하늘의 길이 있고, 땅에는 땅의 길이 있습니다.

두 길이 이어지는 지점에서 신화가 싹텄고, 민족이 시작되었습니다.

누구도 가 본 적 없는 하늘의 길을 통해서 내려온 천손족(天孫族)은 이 길을 통해 지배의 합리적 당위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비행기도 없던 아득한 옛날에 어떻게 하늘의 길을 열어 놓았을까요.

누구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하늘의 길,

그 하늘의 길은 실제로 있었고, 그 길을 통해 내려온 우리 민족의 역사는 위대한 여정이 되었습니다.

그 길을 확인하러 가는 이번 여행 또한 위대한 여정 아닐런지요.

 

새벽에 집을 나선 발걸음은

차창에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한강을 건너고,

이윽고 하늘길로 두둥실 날아 오릅니다.

상징적 의미가 아닌 진정한 하늘의 길입니다.

이렇게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세상 모든 일이 사소해 보이고 또 빛나 보입니다.

과연 360여가지 인간사를 주재하고,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 높이입니다.

 

여행은 낯섬과의 만남의 연속입니다. 그 만남은 길에서 대부분 이루어집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사람들은 늘 길을 물어 왔습니다.

길은 곧 질문의 시작이자 대답의 종결점이었습니다.

길은 곧 가야할 수단이자 그 자체가 도착해야 할 목적지였습니다.

구도(求道)의 열망이 순례(巡禮)의 행렬을 이루었으며, 그 길 끝에 있을 초월적 깨달음과 종교적 구원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문 밖에 있는 세상을 향해 길을 나서지만,

모든 길은 결국 문 안에 있는 집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지요.

집은 곧 자아입니다. 내면의 본질적 존재인 진아(眞我)입니다.

누구나 내면에 신성(神性)이 있고, 그 신성을 회복할 때 본래적인 해탈을 이룰 수 있지 않겠는지요.

밖에서 길을 구한 자, 자신의 내면에서 그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여행이 찾아가는 그곳에 집으로 향하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블라디보스톡, 공항과 항구]

 

 

 

 

 

비행기가 드나드는 곳이 공항이라면, 배가 정박하는 곳은 항구입니다.

블라디보스톡은 공항과 항구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도시입니다.

또한 철길로 이어져 유럽까지 연결되기도 합니다.

공항으로 내려온 하늘의 길은 항구에서 물위의 길로 이어지며, 다시 세계로 뻗어나갑니다.

찾고자 한다면 길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삶이 곧 길이요, 길이 곧 삶인 세상입니다.

 

지금이야 세상 어딜 가든 길 없는 곳이 별로 없지만,

역사가 신화화되던 아득한 옛날에는 모든 길을 만들어서 가야 했습니다.

풍백, 우사, 운사와 더불어 무리 3천을 이끌고 길을 나선 환웅에게

앞에 펼쳐진 길없는 세상은 얼마나 두려운 상대였으며, 안개 드리워진 불확실한 미래였을까요.

한치 앞을 짐작할 수 없는 여정, 위대한 여정은 그래서 더욱 위대했습니다.

결국 그들이 처음 찍은 발자국은 만년이 지난 오늘날 유라시아 철도의 루트가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서산대사께서는 답설야중(踏雪野中)의 계(戒)를 우리에게 남겨주셨나 봅니다.

답설야중거(

踏雪野中去) : 눈내린 벌판을 밟아갈 때는불수호난행(不須胡亂行) :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 오늘 걸어가는 나의 발자국은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하늘의 길과 땅의 길과 물의 길이 서로 모이는 블라디보스톡에 막 내려 앉았습니다.

함께 할 동반들의 얼굴이 모두 환해 보입니다.

알고 가는 길은 얼마나 쉬운 길인지요.

먼저 만들어놓은 길은 얼마나 편안하고 안전한 길인지요.

그 옛날 환웅과 일행이 먼저 밟아 내려와 만들어 놓았던 길을

오늘 우리는 거꾸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블라디보스톡, 사람과 꽃들]

 

 

 

 

 

공식적인 블라디보스톡의 역사는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가 연해주로 부르고 있는 프리모르스키지역을 청으로부터 접수한 러시아는

곧바로 극동의 군사적 거점도시 개발에 들어가 '동방을 다스린다'라는 의미의 블라디보스톡을 건설합니다.

이후 1880년에 벌써 시로 승격되었으며,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지금의 60만 대도시가 되었지요.

 

그러나 그 전에는 청국의 연해주였으며, 만주족과 여진족의 근거지였습니다.

그보다더 전에는 우리 발해의 영토였으며 고구려의 유민들이 자리를 잡은 삶의 터전이었지요.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전에는 환웅과 그의 일행이 이곳을 거쳐 백두산과 요서지방까지 진출한 길목이었습니다.

블라디보스톡 반도의 양쪽에는 아무르만과 우수리만이 감싸고 있으며,

이 바다들은 우리의 동해로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일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금은 러시아 땅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영토의 개념이 지리적인 것보다는 사유의 확장성과 자유로움에 더 좌우되는 시대가 아닐런지요.

자유로운 영혼에게 국경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우주 자체가 나의 국가요 나의 집입니다.

장자적인 스케일로 시베리아를 보면 다 내 땅이요 나의 고향입니다.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 옆에는 늘 꽃이 피고 있더군요.

이 꽃, 잎겨드랑이에 주아가 매달린 것으로 보아 참나리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보는 참나리와는 색감이 많이 다릅니다. 신비로운 색의 참나리꽃입니다.

 

 

 

 

 

 

 [블라디보스톡, 아무르 해양공원과 동해바다]

 

 

 

 

 

 

 

여행자 숙소인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어놓고 블라디보스톡 관광에 나섭니다.

숙소는 역 주변에있고, 뒤편 언덕을 넘어가면 아무르 해양공원과 아르바트 거리가 나옵니다.

휴일을 맞아 해양공원 거리는 인산인해, 발디딜 틈도 없이 붐비고 있습니다.

분수들은 거리밴드의 "Beautiful Sunday(Daniel Boon)" 음률에 맞추어 춤을 추고,

밤에는 불꽃쇼가 시간을 잊은 듯,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블라디보스톡의 저녁나절은 젊은이들의 천국입니다.

러시아의 여름이 이토록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줄은 여기 오고 나서야 알게 됩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고찰해 보면 블라디보스톡은 참으로 명당지지에 자리잡았습니다.

양쪽 아무르만과 우수리만 건너편으로 좌청룡 우백호가 뚜렷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로 반도가 길게 뻗어 내려와 블라디보스톡에서 기운을 수렴한 다음,

바다 건너 루스키 섬에서 남은 정기가 모두 모여 조산(祖山)을 이루었습니다.

과연 하늘의 길, 땅의 길, 물의 길을 모두 모아 세상의 중심이 될 길지로 보여집니다.

이곳에 성곽을 쌓고 힘을 비축하려 했던 발해 대조영의 의지가 현명해 보입니다.

 

저 아무르만의 바닷길은 우리의 동해와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발해의 대조영은 이곳에서 바닷길로 한반도를 건너 일본까지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저 해양공원 길을 따라 요트클럽들이 줄지어 서있고,

그 끝의 광장에는 방파제 따라 사람들이 바다 끝까지 걸어갔다 되돌아 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Shashlychnaya(샤슬릭 나야)라는 샤슬릭 요리집이 있습니다.

샤슬릭은 이집트나 아랍의 샤와르마라는 케밥요리가 러시아로 들어와 변형된 꼬치구이입니다.

우리 일행은 샤슬릭과 맥주와 보드카로 블라디보스톡의 첫 밤을 맞이합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천마와 철마]

 

 

 

 

2015. 07. 27.

 

천년 신라의 고도 경주에는 천마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말무덤 등 말과 관련된 지명이 참으로 많습니다.

말(馬)을 의미하는 낱말이 들어간 고개나 산과 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예로부터 말은 사람과 거의 동격으로 존중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천마총의 천마도를 보면 그 힘찬 기상과 역동적인 몸짓이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 오를 것만 같은 환상을 불러 일으킵니다.

 

왜 우리는 예로부터 말을 숭상하고 말을 동경했을까요.

말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는

생산 능력이나 이동 능력, 더 나아가 전쟁 수행 능력에 이르기까지 거의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말은 곧바로 생존을 의미했으며, 승리의 원동력이 되곤 했습니다.

이쯤 되면 말을 향한 남자들의 열망은 거의 신격화의 수준에까지 이르지 않았을까요.

오늘날 자동차를 대하는 남성들의 로망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나무 숭배에서부터 동물 숭배사상에 이르기까지 토테미즘적 신앙체계를 갖추었던 예전에는

곰 부족, 호랑이 부족, 늑대 부족 등과 더불어 말 부족도 있었습니다.

말토템 부족은 마씨(馬氏)의 존재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짐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마한(馬韓)은 그들의 나라였을 가능성이 많지요.

그러고 보면 천마총이나 천마산, 말동산, 말무덤 등의 유적은 말 토테미즘의 흔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년전 환웅 일행이 천마를 타고 내려왔던 대륙의 길을, 오늘 우리는 철마를 타고 되짚어 올라갑니다.

철마(鐵馬)는 천마(天馬)보다 더 크고 더 힘이 세며 더 오래 달립니다.

그러나 우리의 무의식은 지금 철마가 아닌 천마를 타고 있습니다.

요란한 말발굽소리와 더불어 콧김을 내뿜는 호흡소리,

그리고 고개를 주억거릴 때마다 울리는 말방울 소리가 지축을 흔듭니다.

시원한 시베리아 공기가 말 잔등을 스쳐 지나갑니다.

앞날의 걱정 따위는 잠시 잊습니다. 지금은 흘러가는 땅과 물을 곁눈으로 스쳐 보내며 달립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사람과 꽃들]

 

 

 

 

2015. 07. 28.

 

사람들 가는 곳에는 왜 늘 꽃이 피어 있을까요.

갑사에서 여정의 첫 걸음을 내 디딜 때 그곳에도 연꽃과 능소화가 피어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이곳 횡단열차의 중간 정차역마다에서도 아름다운 꽃들을 볼 수 있습니다.

꽃은 벌과 나비들만 좋아하는게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꽃잎의 색깔과 기상천외한 생김새, 그리고 후각을 사로잡는 향기까지,

꽃은 사람들이 곁에 두고 즐길만 한 모든 요소를 잘 갖추었습니다.

오늘날 꽃은 상징과 은유로 인간사의 슬픔과 기쁨을 대신해 울고 웃을 수도 있게 되었지요.

 

블라디보스톡에서부터 맞이한 꽃들의 연속으로,

이번 여정은 한편으로 꽃을 만나기 위한 여정이 되어감을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인연은 사람들의 만남을 넘어 꽃들과의 만남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꽃에게로 가고, 꽃은 사람들로 이어집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정차역과 통과역]

 

 

 

 

2015. 07. 29.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르쿠츠크에 이르기까지 열차 안에서만 꼬박 3박 4일의 일정이 흘러갑니다.

아울러 열차도 그 시간동안 수많은 역들을 통과해 갑니다.

어떤 역들은 그냥 통과해 지나가고, 또 어떤 역들은 정차해서 짧게는 몇분 길게는 30여분 정도까지 쉬어 갑니다.

또 어떤 역들은 밤에 쉬어서 정차했는지도 모르고 지나가 버리기도 합니다.

열차에게도 인연이 닿는 역과 스쳐 지나갈 인연의 역이 따로 있었나 봅니다.

 

인생을 한갑자 정도 살다보니 스쳐 지나간 정거장들이 눈에 선하여 밟힐 듯 다가옵니다.

어떤 인연은 통과역이 되어 흘리듯 아쉬움 속에 보낼 수 밖에 없었으며,

또 어떤 인연들은 잠시나마 머무는 정차역이 되어 함께 나눈 많은 이야기들이 추억으로 남게 되었지요.

영원히 머무르게 될 정거장은 아마도 없겠지요. 다 한때 잠시의 머무름에 만나고 흩어지는 삶이 아닐지요.

통과역은 회한으로, 정차역은 아쉬움으로, 기차가 달리는 한 이야기 또한 멈추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종착역이 되고도 싶었습니다. 그냥 흘려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영원히 곁에 붙잡아 두고 싶었지만, 세월은 덧없고 인생은 짧았습니다.

원망스런 기차는 기적소리조차 남기지 않고 내가 서있는 앞을 지나 저쪽으로 지나가 버렸지요.

지금 머무르고 있는 역이 있습니까. 그 역에 최선을 다하십시요.

당신의 정차역이 밤에 지나가지 않기를, 그냥 지나치는 안타까운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마을과 들판]

 

 

 

 

2015. 07. 30.

 

그 넓은 시베리아 평원에도 종종 사람의 흔적이 보이곤 합니다.

하루 종일 빈 들판과 언덕만 지나가다가도 언뜻 마을이 나타나 반가운 사람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장려한 노을이 구름 가득한 하늘을 물들이며 서쪽으로 기울어 가기도 합니다.

붉게 떠오르는 태양이 대평원 저쪽에서 새롭게 하루를 반짝여 주기도 합니다.

갑자기 나타난 자작나무 숲의 장엄한 행렬에 탄성을 지르기도 합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분홍바늘꽃 꽃밭이 대지를 붉게 물들이며 흘러가기도 합니다.

 

시베리아 벌판은 인생의 축소판 같습니다.

때로는 황량한 풍경만이 지평선까지 뻗어 나가 빈 가슴을 아릿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전선줄 너머로 말과 소들이 초원위에 뛰어노는 그림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들판 사이로 굽이쳐 흐르는 물길을 만나면 당장 뛰어 내려가 발을 담고고 싶어지기도 하지요.

오랜 기다림끝에 만나지는 마을들은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줍니다.

사람이 사람을 힘들게도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가장 기쁘게도 합니다.

 

울란우데를 깊이 잠든 한밤중에 정차하여 대면하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연을 다 만날 수는 없습니다. 스치는 인연은 스쳐 보내야 합니다.

3박4일간의 열차살이 끝에 회색빛으로 밝아오는 새벽을 이르쿠츠크에 도착하며 맞이합니다.

블라디보스톡을 떠난 이래 가장 사람이 많이 사는 마을입니다.

마을에서 시작한 여정이 깊은 들판을 지나 또 다시 사람들이 많이 사는 대도시로 이어졌습니다.

 

위대한 여정은 이곳에서 다시 첫 걸음을 시작합니다.

우리들의 삶에 두번째 삶은 없습니다. 늘 처음의 삶이고 첫 걸음이지요.

어딜 가든 늘 첫 걸음, 어느 날에 시작하든 늘 첫 날이 나를 어디로 인도할지 가슴이 설레입니다.

비 내려 젖어있는 이르쿠츠크역 앞길로 첫 발을 내디딥니다.

정신을 신산하게 만든 먹구름이 낮은 하늘 위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  How Can I Keep From Singing(St' Philips Choi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