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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안에서/Essay & Photo

얼레지와 노루귀의 사랑 이야기

by 緣海 2008. 4. 2.

 

 

 

 

[어느 꽃같이 고운 봄날이었습니다]

 

겨우내 얼었던 개울물도 풀려서 여기저기 웅크리고 있는 바위 사이를 소리내어 흘러가고,가지 끝마다 새 잎들이 돋아나고, 그 사이에서 새가 울어대는 아름다운 계절이었지요.계곡 물을 따라 떠내려 가다가 돌들 사이에서 잠시 멈춘 나뭇잎 할아버지가 얘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개울가 바위틈에 얼레지 소녀가 살고 있었단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며 햇살에게 말을 거는 그 소녀는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봄날이 좋았습니다. 괜히 지나가는 꿀벌에게 웃음도 지어 보이고, 먼 산을 바라보며 까치발을 딛기도 했지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수선화처럼 하루를 보내기도 했답니다]

 

얼레지소녀는 모든게 궁금했습니다. 봄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저 산 너머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왜 나는 이렇게 생겼을까. 나는 잘생겼을까 아니면 못생겼을까. 아마 분명히 나보다 예쁜 얼레지들이 많을거야.

 

 

 

[나는 분명히 못생겼을거야!! 얼레지 소녀는 점점 더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그 옛날에 수선화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자신을 짝사랑했다던데 나도 수선화처럼 잘 생겼으면...얼레지 소녀는 이제 더이상 물을 바라보지 않고 한숨만 푹 푹 내쉬었습니다.

 

 

 

[얼레지 소녀는 자신을 이렇게 못나게 낳아준 부모님이 원망스러워졌습니다]

 

이리 돌아 앉아 생각해 보고, 저리 돌아 앉아 생각해 보아도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 노릇이었습니다.기왕 낳아줄 것이면 예쁘게나 낳아주실 것이지... 이제는 지나가며 얼굴을 스치는 바람도 귀찮고공연히 말을 걸어오는 햇살도 괜히 잘난 체 뽐내는 것 같아서 싫어졌습니다. 보라색 얼굴에는 수심만 가득했지요.

 

 

 

[어느날 동생이 태어났습니다. 동생은 연약했지만 너무도 귀여웠습니다]

 

얼레지 소녀는 생각했습니다. 나도 어릴 적에는 이렇게 예뻤을텐데 지금은 왜 이렇게 미워진 걸까?얼굴 색깔도 맘에 안들고, 머리는 왜 또 자꾸 뒤로만 말려 넘어가는지....ㅠㅠ

 

 

 

 

[얼레지 소녀는 자기보다 예쁜 동생을 귀여워해 주었습니다]

 

동생 얼레지는 그 소녀 얼레지와는 다른 모습이었으니까요. 동생 얼레지는 머리카락도 단정하고처녀치마처럼 옷매무새도 단정했습니다. 둘 다 고개를 숙이긴 했지만, 얼레지 소녀는 동생이 부러웠습니다

.

 

 

 

[두 자매 얼레지는 서로 장난도 치면서 나날이 자라났습니다]

 

어느덧 동생 얼레지도 머리가 말려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얼레지 소녀는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얼레, 얘도 나를 닮아가네? 나를 닮으면 안될텐데 이를 어쩐다?" 그런 그들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노루귀 한 쌍이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얼레지 자매는 둘만의 문제로 그들조차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 곁을 스쳐 지나간 건 청노루귀 형제였습니다]

 

햇살에 비치어 그들의 다리에 난 잔털이 반짝였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보랏빛이었으며, 유난히 작은 키였지만, 걸음만큼은 당당하고 힘차 보였습니다.

 

 

 

[두 노루귀 형제의 얼굴은 자신감으로 반짝였으며 언제 어디서든 함께 하였습니다]

 

아까 두 얼레지 자매의 옆을 지나자 형제는 풀이 많은 바위틈에 앉아 잠시 쉬어가기로 하였습니다.그 형제는 집에 두고온 부모님과 다른 형제들이 생각났습니다. 집안이 가난하여 제일 나이가 많은그 두 형제가 집을 나서서 돈을 벌어보려고 큰 도회지를 향하여 가고 있던 참이었거든요.

 

 

 

[산너머 고향 집에는 부모님과 다른 형제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가진 것 없어도 열심히 일하며, 이웃에게 친절하고, 더 어려운 노루귀들을 보면 손에 들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주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노루귀들이었습니다.  

 

 

 

[어느덧 동생 얼레지도 다 커서 언니 얼레지와 똑 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차이가 많았습니다. 동생 얼레지는 늘 언니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고자 애썼습니다.항상 언니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언니는 세상에서 제일 예뻐. 언젠가는 언니를 알아주는 누군가가 나타날거야."

 

 

 

[두 자매는 언제나 함께 다녔습니다. 함께 바위 틈에서 해바라기를 하곤 했습니다]

 

햇살은 반짝이고 공기는 부드러운 멋진 봄날이었습니다. 이런 날이면 언니 얼레지도 자신만의 슬픔을잠시나마 잊곤 했습니다. 세상이 밝으니 마음까지도 따라서 밝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무언가를 본 얼레지들은 본능적으로 바위 뒤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리고는 열심히 훔쳐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들 자매는 그들이 가장 못생겼다고 한탄하고 있었는데,그들이 본 것은 그들보다 더 못생기고 추하기까지 한 것이었기에 놀란 나머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고생끝에 돈을 벌었지만, 얼굴이 하얗게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노루귀였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언니 얼레지는 그 노루귀들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요. 마음씨조차 아름다운 언니 얼레지는 측은한 마음을 감출 길 없었던 것이지요.동생 얼레지는 이런 언니를 자꾸만 돌려 세우려고 했습니다. "언니, 정신차려 제발. 쟤네들은 우리하고는 너무나 달라. 키도 작고, 가진 것도 별로 없단 말이야."그러나 언니는 그런 동생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니? 쟤들은 우리하고 모습만 다를 뿐이지 우리보다 열등하지는 않아."

 

 

 

[언니 얼레지는 형 노루귀 앞에 섰습니다. 뒤에서는 동생 얼레지가 지켜봅니다]

 

언니 얼레지는 뻗칠 듯이 얼굴을 내밀어 노루귀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들 사이에 아무런 장벽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주고 받는 마음만이 있었을 뿐,둘은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서로 이해하고 보니 많은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아 기뻤습니다.동생은 '잘못된 만남'이라며 울상이 다 되었습니다. 그런 동생을 언니 얼레지는 잘 달래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동생 노루귀가 동생 얼레지 앞에 섰습니다]

 

바짝 다가서서 자세히 얼굴을 보니 멀리서 보았던 것이 제대로 본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동생 얼레지는 노루귀의 모습을 보고 나서 언니처럼 한 눈에 반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동생 얼레지와 노루귀 역시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습니다]

 

비록 고생끝에 얼굴은 하얗게 바래었지만, 그것은 무언의 훈장이었습니다. 빛나는 보석이었습니다.그들은 이제 부부의 연을 맺기로 맹세하였습니다. 비록 겹사돈이 되었지만, 그것은 잘못된 만남이 아니었습니다.

 

 

 

[주변에서 풀꽃들이 폭죽을 터뜨려 이들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마음의 장벽을 헐어버린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두쌍의 커플은 봄날 화야(花野) 계곡에서 행복의 첫 걸음을 내디뎠습니다.계곡물은 연주를 하고 새들은 축가를 불렀습니다. 카메라를 멘 네 사람의 남녀가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란다. 나뭇잎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마치고 조용히 계곡물을 따라 떠내려 갔습니다]

 

그날 이후 그 나뭇잎 할아버지를 본 사람은 없었지만, 그 할아버지가 남겨준 이야기는 아직도 남아서 전해지고 있답니다.그래서 오늘날에도 봄 햇살이 따뜻해지면 花野 골짜기에는 수많은 얼레지와 노루귀들이 샘물처럼 피어나는가 봅니다. 

 

 

 

<  Asha / Mistic Heart (Prophecy(예언)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