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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안에서/Essay & Photo

명시속의 명소를 찾아서 / 주용일의 단속사지 물앵두나무

by 緣海 2007. 12. 2.



단속사지*  물앵두나무
詩 주용일
사진 緣海
해 바뀌어 가장 이르게 익는다는 열매 물앵두를
속세와 끊어진 절터 단속사지에서 만났다
상전벽해, 단속사 터는 지금 마을이 들어서고
그곳에 늙은 부처와 보살들이 굽은 등 껴안고 산다
세상 떠돌다 한 쪽 귀퉁이 허물어져 찾아온,
이곳에서 처음 만나는 물앵두 나무가
위로라도 하려는 듯 눈인사 건넨다
붉은 눈인사 받아먹고 피가 도는
나는 어쩌면 천년 전쯤 이 절의 사미였는지도 모른다
사랑에 눈이 멀어 탑돌이 여인과 도망쳤다
이제야 돌아온 파계의 사미인지 모른다
뒤늦은 뉘우침처럼 단속사지에 와서 나는 무릎을 꿇는다
밤 깊어 돌아가라 등 두들기는 노파에게 떠밀려
또 옛 파계의 사미처럼 그곳을 빠져나올 때
내 손에 물앵두 그 붉은 것이 쥐여있다
사랑으로 나를 유혹한 여인에게 갖다 바칠
열매는 입맞춤처럼 달다
어둠보다 검게 서 있는 나무에게 묻는다
얼마나 후에 나는 또 이곳 찾을 것인가 하고
다시 천년 후쯤 물앵두 나무
너와 나 어떤 모습으로 만날 것인가 하고
* 단속사지는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 지리산 자락에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절이 너무 번창하여 식객을 줄이기 위해   속세와 끊어진다는 의미로 단속사라 이름을 바꾼 뒤로 절이 쇠락했다고 한다.







-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 -

주용일 시인의 이 시를 처음 읽은 것은 2006년 3월, 계룡문고에서의 출판기념회때였다.
그날 시인은 늦게 도착한 나에게 이 시가 실려있는 시집 "꽃과 함께 식사"에 손수 서명을 해 주면서
반갑게 악수를 청하던 기억이 난다.







-  단속사지 서 삼층석탑, 뒤로는 새로 들어선 절도 보인다. -



시인의 모습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는 시인이 되지 않았다면 필경 스님이 되었을 사람으로 보인다.
그만큼 순박하고 어질며 조그마한 모임이나 만남에도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만큼 그의 시는 불교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해설을 쓴 이은봉 교수의 말을 빌리면,
"구태여 불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주용일의 시는 불교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불교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존재의 진리와 지혜를 바르게 깨닫고자 하는 성찰적 자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자기 성찰을 통한 자기 성숙 또한 중요한 화두로 자리해 있는 것이 그의 시의 한 특징" 이라는 것이다.







- 단속사지 서 삼층석탑, 뒤로는 절터에 들어선 민가들이 보인다. -

그때 처음 접했던 단속사라는 이름을 언제 만나야지 하면서도 그동안 틈이 나지 않아 미루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일전에 부산에 다녀오는 길에 마침 인근을 지나가게 되어 들릴 수 있었다.
우선 보아 석탑은 말해주지 않아도 통일신라시대 양식임을 알 수 있겠고 따라서 절도 그 즈음에 지어졌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삼국유사에 건립 동기와 시기 등이 나와있다 한다.







- 단속사지 석탑 앞에 있는 물앵두로 생각되어지는 나무 -

그런데 찾아온 시점이 늦은 가을이어서인지 석탑앞에 자리하고 있는 고목 한그루에 앵두는 커녕 잎조차 모두 져버려
과연 이 나무가 물앵두나무인지 아닌지조차 알 길 없다.







- 이파리 몇개만 남아 있는 나무 뒤로 동서 삼층석탑과 마을이 보인다. -

사실 단속사 터에는 물앵두나무보다도 정당매라는 청매화 나무가 더 유명한데, 앵두나무 찾다가 매화나무는 찾지도 못하였다.
이제 꽃도 지고 앵두도 떨어지고 잎도 모두 져버린 저 나무에 다시 앵두를 보려면 이 겨울만 넘기면 되겠지만,
시인의 말대로 전생에 같이 도망친 탑돌이 여인과 함께 다시 이 단속사 터를 찾으려면 어느 세월이 흘러야 할까.
천년 전에 만난 그 여인과, 다시 천년 후에 만날 물앵두나무, 시간의 간격은 너무 커도 그 어림이 짐작되지 않는 것일까.







- 단속사 터 앞으로 보이는 군립공원 웅석봉 자락 -






- 마을의 어느 집, 대문은 없고 우편함만 있는데 제주도처럼 나무 두개로 주인의 부재 여부를 표시해 놓았는가. -

- 대문 앞에는 가을 볕에 타작중인 콩다발이 마르고 있다. -






- 한참 떨어진 마을앞 밭 가운데 있는 당간지주 -






사미는 아침 예불을 마치고 처소에 돌아오다가 언뜻 저만치 탑 앞에서 하염없이 탑돌이를 하고 있는 어떤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은 간절함이었으며, 절망적이었으며, 비장의 아름다움이었다.
언뜻 한번의 눈길만으로 마음을 사로잡아버린 그 단소한 소복은 슬픔이었으며, 마음을 부르는 무언의 몸짓이었다.
아아, 이때까지 단속하고 또 단속했던 마음의 빗장은 무슨 소용이었단 말인가. 사미는 너무 젊었다.
처소의 절문을 닫고 연화문의 문살 사이로 그 모습을 훔쳐보는 사미의 등짝에 식은 땀이 흘렀다.
낯선 미풍에 하얀 소복위로 드러나는 여인의 몸매는 악의 구렁텅이였으며, 그 몸짓은 치명적인 악마의 유혹이었다.
사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파르르 떨려오는 눈썹 밑으로는 조용히 눈물이 흘렀다.
그날까지 잊고자 했던 쓰라린 상처가 되살아나는 듯 했다. 아니 잊고자 입적했던 불가의 연이 차라리 후회로 남겨졌다.
다시금, 그 모습으로 하여 다시금 그날의 이별이, 그녀의 눈물이, 그곳의 인연이 되살아 나는듯 했다. 
그것은 너무도 감당키 힘든 아픔이었다.







다시는, 죽어도 다시는 그러한 마음을 갖지 말자 다짐했다. 며칠이 지나면서 그렁저렁 마음의 폭풍도 가라앉는듯 했다.
그러나 며칠 뒤 다시 새벽부터 탑을 도는 그녀의 모습을, 아니 그녀의 눈가에 맺힌 투명하도록 시린 그녀의 눈물을 보는 순간
그간의 다짐은 한낱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인자하게 미소짓고 있는 대웅전의 불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마 밑의 물고기 매달린 풍경을 보았으며, 동종과 목어 저 너머로 먼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부처님 마음을 닮아 한없이 둥글둥글한 산줄기 능선마다 남아있는 잔설 사이로 신록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었고
산 너머에는 아지랑이 어지럽게 피어올라 그의 마음을 자꾸만 흔들리게 하고 있었다.







 그는 결심했다. 이것이 마지막인줄도 알았다. 이것이 운명이라면, 그것을 거절할 어떠한 힘도 그에게는 없었다.
그는 밤늦도록까지 지성으로 탑돌이하는 여인네의 뒤로 다가섰다.
합장하며 한번 그녀뒤에서 고개 숙인 뒤 갑자기 그녀를 끌어안고 뒤꼍으로 달려갔다. 탑 옆에 있던 나무에서 물앵두가 후두둑 흩어졌다.
여인은 가엽게도 너무나 가벼웠다. 한 줌 재처럼 안아도 안지 않은것 처럼 느껴졌다.
명부전 옆을 지나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담을 타고 다시 밑으로 달려 내려가기 시작햇다.
여인은 너무 놀란 나머지 거의 기함을 한 상태였다. 절 입구에 다다르자 거기 당간이 걸려있는 돌기둥 앞에
여인을 내려놓고 절과 주지 스님을 향해 무수히 배례를 올렸다. 그는 이것이 마지막인 것을 알았다.







멀리서 주지스님의 큰 기침소리가 들렸다. 기실 주지스님은 모든걸 다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절을 향해 열심히 절을 할 때마다 대웅전 문살에 비친 그림자는 촛불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릴 뿐
독경소리는 더욱 높아만 갔다. 마치 어서 떠나라는 듯, 그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험한 고개를 오르기 시작했다. 







 여인은 슬픈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딸만 일곱인 집안의 맏이로 태어나 동생들의 응석을 받아내며 어린 시절을 보내었다.
궁색한 집안은 그녀를 거의 노비상태로 있는 집안에 민며느리로 출가하게 만들었다.
 친정에서 박복한 운명이 시댁이라고 조금이라도 나아질 리 없었다.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던 그녀는 우선 논으로 밭으로 내몰렸다.
어린 몸에 하루종일 고된 일에 시달리다 집에 돌아오면 밤에는 남편의 치근덕거림이 시작되었다.
열세살의 그녀에겐 그것은 쾌락이 아니라 차라리 고통이었다. 그저 잠이나 푹 잤으면 좋겠다 싶은데 남편은 밤새 놓아주지 않았다.
이튿날이면 밭에서 일하다 말고 존다고 시어머니한테 된통 혼나곤 했다. 그녀는 마음대로 울 수도 없었다.
운명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그나마 서방이란 것이 삼년후에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밤사이 급살을 맞아버렸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모조리 그녀의 탓이었다. 시어머니는 재수없는 년이 며느리로 들어오더니 아들 잡아먹었다고 매일 구박했다.
그녀의 소복은 마를 날이 없었다. 그녀 나이 열여섯살, 이제 막 피어나는 나이였건만 겉으로 보기에는 스무살도 넘어 보였다.
그나마 시댁에서 쫓겨나자 그녀는 갈 곳이 없었다. 친정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동생들이 무서웠다.
그녀는 혹시나 출가의 기회가 있을까 하여 인근 절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우선 탑을 돌며 주지 스님을 만나 출가를 허락 받으려 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그녀의 탑돌이는 점점 길어졌고 한가지 비원만을 중얼대고 있었다.
"죽을 운명이면 벼락을 내려주시고, 살 운명이면 길을 열어 주소서..."







 사미는 천년 후에 다시 태어났다. 여태도 스님이 되지 못하고 이번에는 시인으로 태어났다.
무엇엔가 이끌려 이미 무너져 폐사가 되어버린 이곳 단속사 터를 찾은 그에게 문득 탑 옆에 한창 흐드러지게 열린 물앵두가 보였다.
무너져 가는 탑을 붉게 물들인 물앵두를 한 줌 따서 맛보고는 문득 그 옛날의 풍경을 떠올렸다.
결국 인연이 되지 못해 놓쳐버린 그 여인, 죽어서도 잊지 못하던 그 여인, 그 여인을 다시 눈앞에 보는듯 했다.
그날의 입맞춤처럼 여전히 달콤한 물앵두의 속살을 깨물며 그는 어둠보다 검게 서있는 나무에게 묻는다.
얼마나 후에 나는 또 이곳을 찾을 것인가 하고
다시 천년 후쯤 물앵두 나무
너와 나 어떤 모습으로 만날 것인가 하고....










- 평화롭기만 한 마을의 전경이다. -

마을 뒷 길을 따라 올라가 보았다. 이 임도는 웅석봉 중턱을 오르게 되어 있다.
저 마을을 바라보며 양화소록의 저자 강희안의 할아버지 강희맹은 정당매를 심었을까.
신라의 천재화가 솔거는 대웅전에 유마상
(維摩像)을 그렸을까.
남명 조식은 사명당을 만나 나라의 앞날을 탄식하며 시를 읊조렸을까.


아마도 그 젊디 젊은 사미승이 이 길을 오르면서 안고 있는 젊은 소복의 여인에게 속삭였겠지.
우리, 그림이라면 다시 그립시다. 시라면 다시 씁시다.
저기 정답게 지저귀며 노니는 새들도 다 짝이 있는 것을,
그대와 나, 운명이 우릴 거절하더라도 천년 후에 다시 태어나 아쉽고 못다 이룬 우리 사랑
그대는 동탑이 되고 나는 서탑이 되어 만나진 못하더라도 서로를 기다리며 삽시다.
한그루 정당매와 물앵두의 속삭임으로라도 우리 한 곳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삽시다...







- 지리산 웅석봉 군립공원의 단풍 -

때마침 웅석봉은 가을색으로 물들어 복잡한 색깔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이 길따라 오르던 사미승의 그날의 마음처럼....







- 웅석봉 밑에 있는 조그마한 호수, -

맑은 하늘 아래 물색은 때없이 맑고 투명하고 깊어 보였다.
마치 사미승의 품에 안겨 산을 넘던 소복 여인네의 깊게 가라앉은 마음처럼







- 호숫가에서 단속사쪽을 뒤돌아 보며 -

언제나 그렇듯 돌아오는 길은 슬프다.
시인이 천년쯤 전에 이 절 사미의 신분으로 탑돌이 하던 여인네와 함께 도망친 길도 바로 이 길이었을 것이며,
다시 천년 후에 물앵두나무 되어 만나러 간다 해도 이 길로 가야할 것이다.
올 때 하나로 합쳐진 두 갈래 길은, 갈 때 다시 양 갈래 길로 나뉘어져야 한다. 
슬픈 일이지만 이것이 인생이며, 이것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피할 길 없는 운명의 굴레인 것이다.


돌아오는 차 앞유리창에 왠 낙엽 하나가 날아와서 한참을 안을 살피다 다시 날아갔다.










<  Lincoln's Lament - Michael Hopp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