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산수유 꽃이 지천으로 뒤덮이는 마을,
산그늘 밑으로 바위계곡마다 소리내며 흐르는 물,
그 물위에 비친 산수유 꽃망울마다 쉬리들 헤엄치는 곳,
우리나라의 산수유마을, 전남 구례 산동면 위안리,
그곳에서 나고 자라서 결혼까지 하여 처음 공무원 생활을 하고,
서울로 올라와 네 자녀를 낳고 기르고 가르치고 막내를 빼곤 모두 출가시키고,
이제 정년퇴임을 맞이하여 업무 인수인계를 위하여 아침에 출근하시다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지난 4일 아침 유명을 달리 하신 둘째 동서형님....
나는 손위로 동서형님이 세분 계시고, 손위 셋, 손아래 하나 등 처남은 모두 4명이 있다.
이를테면 아들넷 딸넷인 집안인데, 아들 딸 사위 며느리 할 것없이 형제처럼 지냈었다.
그러던것이 맨처음 장인어르신, 재작년에 둘째 처남, 작년에 장모님께서 돌아가시더니
올해는 둘째 동서형님께서 소천을 받으셨다.
제일 큰 동서형님도 건강이 안좋으시니 올해를 무사히 넘기실지...
가깝고 친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곁을 떠나간다는 건 슬픈 일이다.
올 때는 가장 나중 온 사람이 가장 많은 환대를 받고,
갈 때는 가장 먼저 가는 사람이 가장 많은 환송을 받는 법이지만,
그래선지 장례식엔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어 외롭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모두 다 보내고, 막상 나의 일이 되었을 때는 외로울까? 쓸쓸할까?
인생이 그리 긴 게 아닌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일 닥칠 때마다 더욱 무상함을 느낀다.
이제는 어리던 조카들이 다들 장성하여 조카며느리들을 맞아들이고,
이 집 저 집에서 새로운 얼굴들이 연이어 탄생하는 일이 잦아질 때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세대는 이미 지나가는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났었는데
나의 장례식장에는 나와 함께 한 기억이 별로 없는 낯선 얼굴들이 많을 것 같아서 서럽다.
차가운 공원묘지 땅 속에 형님을 안장하고 돌아서면서 눈 쌓인 묘역을 돌아 보았다.
오열하는 조카들과 처형, 그리고 조문객들의 얼굴표정처럼 굳은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산 사람은 어찌되었든 그래도 산다. 미완의 일들과 가사를 등뒤에 남기고 예순 둘의 나이에
길을 재촉하신 고인의 발걸음과, 고인과 함께 나눈 추억만이 안타까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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