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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안에서/Essay & Photo

시 속의 명소를 찾아서 - 탑정호의 엘파소

by 緣海 2007. 5. 13.

1. 시 속의 명소를 찾아...

유명 시인들의 시를 감상하다 보면 특정한 지역이나 장소, 인물 등이

시어로 등장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풍경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들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감정의

내면적 풍경을 옮겨놓은 서정시의 경우에도 이러한 지명이나

자연의 경치에 빗대어 기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전 미군의 이라크 공격이 한참이던 제 1, 2차 걸프전

당시에는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시어로 하는 시들이

다수 등장하였었다. 필자도 '바그다드 카페'라는 졸시를 만들어

본 적이 있지만, 실제로 바그다드 카페는 대전 유성의 궁동에

존재하고 있었다. 나중에 혹 그 시를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만,

그 카페에 찾아가 그 자리에 앉아서 그 시를 읽어보면 훨씬 더

시인의  마음과 정서적 일치상태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내가 읽은 시들에 나오는 명소를 모두 찾아보리라 마음

먹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마음일 뿐 여태 그러한 곳들을 찾아간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너무나 알려진 곳은 특별한 감흥을 느끼기에는

너무 알려진 느낌이라서 선뜻 시의 느낌이 마음에 다가 오지 않았다.

시인이 마음 속에 비밀스럽게 간직하였을 숲속의 옹달샘과 같은 장소,

아무나 찾지 않는, 그래서 그 느낌이 지금도 그대로 간직되어 있을 것만

같은 장소, 그러한 곳을 찾아내어 그곳에서 시인의 시를 읽어가며

그 시를 쓸 당시의 마음을 그대로 느껴 보고 싶었다.

 

2. 부여와 백제의 시인 윤순정

부여에는 아직 백제가 있고 부여에는 마르지 않는 시인 윤순정이 있다.

여기에서 마르지 않는다 함은 그의 시심이 마르지 않음이요,

그의 부여사랑이 마르지 않음이요, 그의 넉넉한 풍채와 마음이 마르지 않음이다.

그 마르지 않는 부여사랑으로 인하여 필명 또한 부사랑(扶사랑)으로 하고 있으니

그의 순정은 부여와 백제를 향하고 있음을 그가 만들어낸 시 외적으로도

충분히 외치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까닭에 윤순정의 시 대부분에는 부여와 그 일대에 흩어진

백제시대의 유적 유물의 흔적이 묻어있고, 발길은 언제나 그 옛날

고토왕국 백제를 향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에서 태어난 시인은,

한국방송대의 문학 동아리인 수레바퀴에서 처음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인으로 등단한 후에는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계백의 달'이

논산시 부적면 계백장군 묘역에 시비로 세워지게 되었다.

계백장군 묘역은 논산의 탑정 저수지 위 편안한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의 시 '비오는 날, 엘파소'에 나오는 장소인 엘파소는 이곳에서 탑정

호수를 가로질러 바로 맞은편 즈음에 자리잡고 있는 카페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계백의 달' 제하의 시집 한 권을 펴냈는데, 발문을 쓴

이근배 시인이나 구재기 시인의 말처럼, 부여와 백제 사이에서

분명한 사람 윤순정, 그리고 부여의 유물과 유적 사이에서 확실한 시인

윤순정을 만나고 싶으면 시심 刊, 윤순정의 시집 '계백의 달'을

읽어 보도록 권하고 싶다.

 

 3. 탑정호수의 비오는날, 엘파소

탑정호수는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과 부적면 일대에 광활한 면적으로

펼쳐져 있는 인공호수로서 일제시대때 조성되었다 하며,

수몰된 지역에 어린사(魚鱗寺)라는 절과 탑이 있었는데 이를 수몰 이후

제방 부근으로 옮기면서 탑정호라는 명칭을 얻었다 한다.

면적은 152만 2100평으로, 해질녘 호수에 비친 석양의 노을은 매우

아름다워 많은 시인, 묵객들과 연인들 그리고 사진가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제방 옆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바로

호숫가 언덕위에 엘파소 카페가 자리잡고 있는데 옛 로마시대

회랑이나 포룸을 연상시키는 서구적인 모습이다.

시인의 시집 한 권을 들고, 대략의 위치를 눈대중하며 무작정

호수를 따라 운전해 올라가고 있는데 역시 예상했던 그 지점에 예상했던

그 모습으로 엘파소는 서 있었다. 일부러 의도하진 않았지만 오고 보니

날씨마저 우중충, 금방이라도 큰 비가 쏟아질 듯한 날씨여서

시의 분위기 뿐 아니라 금방이라도 울음을 폭발시키고 싶었던

내 마음과도 맞아 떨어지는 모습들이었다.

여기가 바로 이 시의 고향이야! 더 갈 곳이 없다 싶을때 찾아와

보고 싶었던 곳, 바로 그 곳에 내가 있었다.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이 바로

바닥이야. 주용일 시인은 더 내려갈 수 없는 바닥에 닿아야만

그 바닥을 차고 올라갈 수 있다 하였지만, 지금 이 바닥에서

나는 겁을 먹고 잔뜩 움추려 들어 있다. (비가 내리고 / 세상을 버리고 싶은 /

간지러움이 발작을 하면....) 윤순정 시인은 이곳을 찾았다.

나도 시인처럼 어느 누군가와 이곳을 찾았다. (말과 말의 꽃들은 끝내

배아(胚芽)하지 못한 채 / 치유될 수 없는 우리의 가련한 나르시즘은

초라하다 못해 사각지대(斜角地帶)의 울짱이) 되어 서로를 말없이 가두어 놓았다.

쉬었다 가는 곳, 엘파소에서 시인은 잠시도 마음 뉘이지 못하고

식지않은 찻잔을 바라보며 일어섰지만, 우리는 울분과 억울함과 탄식과

비참함 등을 잔뜩 쏟아내고는 역시 잠시도 마음 뉘이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서고야 말았다. 우리 또한 어쩔 수 없는 독선의 아류(蛾類)들일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의심과 반목과 믿지 못할 세상에 대한 번민이 나방이

되어 우리 주위를 날아 다니고 있었다.

 

4. 다시 바닥에서

그렇게 회색빛으로 출렁거리던 물결은 바로 너의 눈빛 속에 있었다.

베이스 캠프가 없다면 제2, 제3의 정상도전을 위한 근거가 없어진다던,

그래서 가장 낮은 곳에 바닥을 설정해 놓자던, 그래서 그 곳에서

다시 시작하자던 말들이 빛을 발하며 눈동자 속에서 문득 떠오르다가

사라지곤 하였다. 어느 곳에서 보았던, 세상이 너를 버렸다고 하지 말라.

세상은 너를 가진 적이 없으므로... 그래 언제나 나 뿐이었어.

돌아오는 길에는 기어이 큰 비를 뿌리고야 말았다.

와이퍼가 닦아주는 유리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전조등이 밝혀주는 앞길을 바라보며

연산을 거쳐 대전으로 돌아 들었다. 내 눈에 흐르는 강물은 어느 와이퍼가 닦아줄 것이며,

내 앞길에 드리워진 암묵은 어느 전조등이 밝혀줄 것인가.

세상은 나아갈수록 아득하기만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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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리나행 기차는 8시에 떠나네 - 김지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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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엘파소 - 탑정호수

윤순정


비가 내리고
세상을 버리고 싶은
간지러움이 발작을 하면
나는 어느 누군가와 이 곳을 찾는다
누구라도 좋다 꼭 네가 아니라면
황홀한 노을 사이로 술렁이던 눈빛
깊은 호수 속으로 사라지고
청둥오리 떼지어 물살을 가른다
마주 앉은 너는
허리를 곧추 세우고 나는
일직선으로 입술을 굳게 다물어
말과 말의 꽃들은 끝내 배아(胚芽)하지 못한 채
치유될 수 없는 우리의 가련한 나르시즘은
초라하다 못해 사각지대(斜角地帶)의 울짱이 된다
쉬었다 가는 곳, 엘파소
우리는 잠시도 마음 뉘이지 못하고
식지 않은 찻잔을 바라보며 일어서야 한다
저 둥글고 드넓은 호수에 발을 담그고
차가운 이성을 치유하고 싶지만
피차 그럴 수 없는 독선의 아류(蛾類)들이다
다만, 새까맣게 거꾸러지며
용솟음쳐 오르는 잉어의 지느러미 사이로
저 깊숙이 가라앉은, 너의 
수면 가득 술렁이던 눈빛만이
흔들리면서, 분출하는
생명의 메시지로 떠 오르다가,
떠오르다가 사라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