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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안에서/Poem & Photo

여행 (旅行)

by 緣海 2019. 1. 1.

[청산도 가는 배 안에서]

 

 

 

 

자동차를 버리니

기차가 내게로 왔다

커다란 배와 버스도 오고

택시도 왔다

마치 먼 예전부터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들끼리 떨어진 간격은

걸어서 메웠다

때로는 일부러 걷기도 했다

 

 

걷다 보니 사람이 보였다

그동안 놓쳤던

풍경이 가까이 다가 오고

숨어 있던

보석같은 삶과 문화의 흔적들이

비로소 보였다

마치 서서히 열리는 꽃 안에 꽃술이 보이는 것처럼...

 

여행이었다

곡류 같기도 하고 황톳길 같기도 한...

 

 

 

여행 / 연해

 

 

 

 

 

[청산도 범바위]

 

 

 

 

 

여행이란

어디로가 아닌 누구랑 가느냐이다

멤버가 결정 되면

갈 곳이 어디인 지는 저절로 정해졌다

가야 할 그곳 보다

함께 할 시간이 더 좋아서

 

 

혼자였다면

굳이 영혼이라도 데려 갔을 것이다

뒤돌아 보았을 때

아무도 보이지 않으면

길가 바위에 앉아

뒤쳐진 영혼을 기다리며 느긋하고 싶었을 것이다

 

 

처음 만남에서

어떤 인생을 살지 결정 되었듯

그 사람으로 결정 되었을 때

여행은 이미 신발 끈을 조여매고 있었다

 

 

 

여행2 / 연해

 

 

 

 

 

 

[권덕리 범바위]

 

 

 

 

 

발길 닿는대로

느낌 오는대로,

바람 부는대로

 

 

길이 곧든 휘었든

일부러 길을 벗어나,

풀과 나무에 휘둘리며

 

비오면 아주 좋고

눈이 오면 더욱 좋고,

맑아도 좋고

 

해무에 젖어가며

풀이슬 젖어가며,

가랑비에 마음까지 젖어가며

 

때로는 달빛을 데리고

뜨거운 태양과 함께였다가,

더러 노을을 벗삼아서

 

길을 그려 돌아 가게 하고

물을 풀어 흘러 가게 하고,

산을 놓아 쉬어 가게 하고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 앉아

하염없이 앞을 보다가,

넋을 놓고 시간과 놀다가

 

배낭은 무겁지 않게

주머니도 가볍게,

마음도 가볍게

 

혼자면 혼자인대로

둘이면 둘인대로,

여럿이 함께여도 떠나는게 좋아라

 

 

여행3 / 연해

 

 

 

 

 

 

[불갑사 저수지]

 

 

 

 

 

파도와 대화하고

구름과 이야기하며

바람하고 논다

놀다가

 

그도 저도 없으면

나랑 논다

 

매의 언어로 독백하고

나무의 문법으로 일기를 적으며

강물의 운율로 노래한다

최대한 단순해지기

 

눈물도

한숨도

걱정도 다 끌어다

섞고 뒤집고 치대다가

종내는 가지고 논다

놀다가

 

책임도

배려도

관심도 다 잊고

온전히 내가 나 되는 시간

 

머리를 버리고

손발도 다 버리고

가슴만 남겨

풍경이 된다

그 풍경 속에서 혼자 논다

 

 

여행4(혼자만의 여행) - 연해

 

 

 

 

 

             

[소양호가 38선을 만나는 곳]

 

 

 

 

 

여행자는 신분이 거지와 동격이다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가야 할 곳은 너무나도 많다

 

두 발만 있으면

가지 못 할 곳이 없는 튼튼함

숟가락만 있으면

절대 굶지 않을 뻔뻔함이 무기이다

 

신문지 한 장과 박스 한 개로

호텔 부럽지 않은

숙소를 마련하는 묘기를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한 끼의 만찬과

하룻밤의 침대를 위해

가진 돈을 다 털어 넣기도 한다

 

지상 최고의 벤치에서

상상 너머의 저쪽 풍경을 보며

울타리 밖에

나의 집을 두는 장자가 되기도 한다

 

관광객은 그저 객

설명을 들을 귀와 눈만 있으면 되지만

안아 보고 누워 볼

손과 발이 필요한 자는

세상을 훔치는 여행자란 놈이다

 

 

여행5 / 연해

 

 

 

 

 

 

 

 

<  James Galway & Phil Coulter - Believe Me If All Those Endearing Young Charms & The Gentle Maid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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