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족두리풀] - 모녀의 정
[오늘, 살 수 있다면....]
꿈을 꾼 듯한 오후,
숲속엔 낙엽송 바늘잎 사이로 빛이 새어 들고,
빛은 나무들 사이를 가르고 날아와 이야기를 속삭이듯 족두리풀 족두리에 내려 앉는다.
오래된 전설의 등피에 불을 밝히듯,
족두리에 불이 켜지면 언제였던가, 그 옛날 설레이던 첫날 밤의 기억이 새록 솟아나고,
그 기억은 새콤한 크림색이었던가, 달콤한 쵸콜렛 색이었던가.
날아간다. 다 날아간다.
물소리 들리는 샘가를 거쳐, 먼지 반짝이는 숲속의 희끗한 공기 사이로,
거두어 가시는 봄날의 안개같은, 희미해진 기억의 한 꼬투리,
그저 힘없이 흐느적이는, 그래서 생은 족두리풀 꽃이 되고, 꽃은 떨어져 봄을 보내고, 봄은 나를 보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