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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안에서/Poem & Photo

우리에게 시간은

by 緣海 2008. 3. 20.

 

 

 

 

 

 

 

우리에게 시간은

 

緣海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너무 짧았어요

세상의 빛은 높은 나무에게 모두 빼앗기고

숲 사이로 자투리 빛이 탐조등처럼 들어올 때

햇살은 반짝이며 얼굴위에 머물렀지요

잠시나마 자태를 뽐내며 해바라기를 할 때

어디선지 찾아온 꿀벌 한 마리

그의 다리에 묻어온 꽃가루를 받아들였을 때

빛은 이미 미끄러져 다른 꽃잎위로 가버렸어요

아쉬운 마음으로 꽃잎마저 떨구어 버리고

푸른 잎 단풍이 되도록 희망을 키워 왔건만

미래는 새로운 땅을 찾아 가버렸지요

혹독한 겨울바람에 몸은 화석처럼 굳어가고

멀리 남녘에서 꿈결처럼 봄소식이 들려올 때

낡아버린 얼굴에도 다시 한 번 볕이 들고

열매 떠난 꽃자루가 환하게 피어납니다

이 땅의 철지난 들꽃들이여 그 볕을 피하지 말아요

이름 없이 무명초로 살아가는 삶이라지만

한때는 세상을 매혹시킬 만큼 아름다움이었고

지금은 풍설에도 변하지 않을 그 마음임을

우리 잊지 말아요!

영광과 환희는 짧고 고통과 인내는 길었지만

우리의 몸이 거름이 되어 다시 꽃피울 새싹들이

지난 봄 우리의 모습이란 걸

우리 잊지 말고 기억하기로 해요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너무 짧았지만

그래도 사계절 모두 살아 봤잖아요

 

 

 

 
Little Moritz / Bernward Ko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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